[Dispatch=정태윤기자] 독야청청하던 스승을 이긴 제자. 스승은 초심을 찾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영화에선 한 줄 대사로 표현했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그 마음은 상상할 수 없었다.
심지어 실화다. 바둑 레전드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 바둑은 가장 정적인 스포츠라 불린다. 그러나 이 사제의 이야기는 그 어떤 액션보다 다이내믹했다.
이병헌은 바둑판 앞에 앉아 조용하지만, 격한 감정 변화를 그려냈다. 정적 속에 절망, 자신감, 때론 폭발하는 감정까지 미묘한 떨림으로 완성했다.
"바둑 두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눈빛, 손짓, 마음가짐, 질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나오는 느낌, 승리를 예감했을 때의 포인트 등을 캐내고 발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병헌)
영화 '승부' 측이 19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언론 배급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병헌,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조우진, 김형주 감독 등이 자리했다.
'승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 분)이 제자 이창호(유아인 분)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김형주 감독은 "저도 바둑을 하나도 몰랐다"며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디벨롭했다"고 밝혔다.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로 변신했다. 조훈현은 세계 프로바둑 선수권대회 최강자로 우뚝 서며 국민적 영웅이 된다. 이병헌은 2:8 가르마에 얼굴까지 갈아 끼우며 싱크로율을 높였다.
이병헌 역시 바둑은 잘 몰랐다. 국수다운 노련한 손놀림이 필요했다. "돌을 놓고 거둬가고, 빽빽한 바둑알 사이에 다른 돌은 건들이지 않고 놔야 했다. 반복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를 결정하자마자 바둑판을 집에 놨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아들과 틈만 나면 오목을 뒀다. 돌을 놓고 치우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바둑 기사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따라 했다. 이병헌은 "바둑 두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눈빛, 손짓, 마음가짐, 질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나오는 느낌, 그리고 이길 것 같을 때의 자신감 등의 포인트를 캐내려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바둑 선수가 되기 위한 준비는 마쳤다. 다음은, 조충현이 제자에게 패배한 그 감정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가 이창호에게 패배한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이병헌은 "제자에게 지고 난 후 계속해서 패배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계단 한계단 수많은 경기를 밟으며 정상에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초심을 찾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한 줄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그 감정을 읽어내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이병헌은 제자에게 질 것 같은 초조함과 불안함, 지고 나서의 절망감과 자존심 상함 등의 감정을, 미세한 떨림과 작은 움직임으로 완성했다.
유아인이 제자 이창호를 소화했다. 발랄하고 개구진 얼굴로 어른들을 손쉽게 이겨나간 어린 시절을 지나, 성장한 이창호의 얼굴을 그려냈다.
소년답지 않게 신중하고 끈덕진 모습으로 완성했다. 실제 이창호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60대 노인 같았다. 돌다리를 두드리다 못해 빙 둘러 가는 호흡.
이병헌은 유아인에 대해 "작품에서 첫 만남이다. 제 생각보다 과묵한 후배였다"며 "현장에서 역할에 몰입할 때 굉장히 진지한 모습을 보여서 저도 신 안에 빠져들기에 용이했었다"고 떠올렸다.
유아인 역시 쉽지 않은 연기였다. 완벽한 포커페이스에 투박한 바둑 스킬. 스승의 가르침에만 기대지 않았다. 스스로 고민하고 돌파구를 찾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김 감독은 "이야기의 무게 추는 조훈현 국수에게 있다. 그러나 영화는 두 사람의 대결과 성장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떤 때는 승자에게, 어떤 때는 패자에게 마음이 갔으면 했다. 벨런스에 유의하며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병헌은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영화"라며 "정적인 감정 변화는 스크린에서 보셔야 디테일한 감정을 다 받아 가실 것"이라며 관람을 당부했다.
'승부'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사진=송효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