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20%를 쏟았어도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으레 하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어려운 연기였다. 1인 2역을 소화해야 했다. 전기수 '천승휘'와 양반가 맏아들 '성윤겸'. 얼굴을 제외한 모든 것이 대척점에 있다. 두 인물을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잘 해냈다. 눈빛만으로도 다른 얼굴을 완성했다. 천승휘로서 '구더기'(임지연 분)를 바라볼 땐 생태, 성윤겸은 동태가 된다는 반응이 있을 정도.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쉽다고 말한다.
"(임)지연 선배님이 혼자 찍은 장면을 나중에 보니까 너무 슬프고 처절했습니다. 끝나고 오히려 더 몰입됐죠. 다시 할 수 있다면 승휘로선 더 사랑해 주고, 윤겸이로선 더 미움받을 자신이 있어요!"
'인생캐'를 만난 배우 추영우를 만났다. 그의 연기를 향한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 "도전, 도전, 도전"
'옥씨부인전'은 치열한 생존 사기극이다.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 옥태영(임지연 분)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의 이야기를 그린다.
추영우에게 '옥씨부인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첫 사극으로 승마, 활쏘기, 판소리, 한국무용까지 배워야 했다. 심지어 1인 2역까지 소화해야 했다.
그는 "첫 사극, 첫 1인 2역 도전이라 많은 것을 배웠다. 판소리, 한국무용 등 실기적인 부분을 연기하는 건 재미있었다"면서 "1인 2역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다"고 털어놨다.
천승휘는 조선 최고의 로맨티스트다. 타고난 예술성으로 유려한 예인의 자태를 뽐낸다. 가짜 옥태영의 위험천만한 사기극에 거침없이 뛰어들며 그를 지켰다.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성윤겸은 청수현 현감의 맏아들이다. 성소수자라는 비밀을 간직한 묵직한 인물. 대척점에 있는 둘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최대한 간극을 벌리려 했어요. 겉모습으로는 의상의 채도부터 목소리 톤과 표정 등을 다르게 했습니다."
◆ 1인 2역
두 사람을 오가는 건 쉽지 않았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복잡해졌다. 사방이 막힌 기분을 느꼈을 때, 임지연의 조언을 들었다.
그는 "(임지연) 선배님이 너무 지킬 앤 하이드처럼 왔다 갔다 하려고 하지 말고 간단한 디테일이나 리액션에 신경을 써보라고 코치를 해주셨다"고 전했다.
"선배님께서 '윤겸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태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승휘와 다를 거다. 그것만 차이를 준다면 충분할 거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거기에 자신감을 얻어서 하나씩 해나갔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승휘로서 태영을 바라보는 눈은 애정이 넘쳤다. 그러나 윤겸으로선 버석하고 메마른 얼굴로 묘한 다름을 느끼게 했다.
친동생 차정우의 도움도 받았다. 1인 2역을 하는 추영우의 대역으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다른 대역 배우가 있었다. 그런데 몸과 얼굴선이 다르다 보니 CG에 한계가 생긴 것.
그는 "감독님께서 저랑 닮은 배우는 없냐고 하시더라. 남동생이 있는데 배우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바로 데려오라고 하셨다. 너무 닮아서 가리개를 쓴 장면은 CG 처리를 아예 안 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 "나의 구더기, 임지연"
'옥씨부인전'의 타이틀롤은 임지연이다. 임지연은 후배들을 이끌며 현장을 이끌었다. 추영우에게 리딩 전 함께 대본을 맞춰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기도 했다.
추영우는 "연습실에서 1~2부를 같이 맞춰보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편하게 풀어주셔서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고 떠올렸다
막히는 순간에도 임지연의 조언 덕에 헤쳐나갈 수 있었다. "조언과 충고를 조심스럽게 해주셨다. 후배인데도 배려해 주시는 점이 감사했다. 그래서 먼저 질문도 많이 하며 배우려 했다"고 전했다.
임지연의 열연을 보며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는 "많은 분이 좋게 봐주셨지만, 제 연기는 50점이다. 다시 찍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임)지연 선배님이 혼자 찍으신 감정신들을 실제로 보진 못했어요. 나중에 보고 나니까 너무 슬프고 처절했습니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승희로서 더 사랑해 주고 싶고 윤겸이로서는 더 미움받을 자신이 있습니다."
◆ "예쁨받는 비결이요?"
데뷔한 지 4년. 적은 연차인데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연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추영우가 관계자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일단 고집이 없다.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신인들이 오히려 본인의 연기관과 고집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는 선배님과 어른들에게 많이 의지한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항상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촬영장의 소품이라 생각하고 연기합니다. 때문에 감독님의 말을 전적으로 잘 들어요. 의견을 듣고 해보려는 모습을 예뻐해 주시는 게 아닐까요?"
스스로를 너무 저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되물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정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했다. 자신감이 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은 친구들이 '누가 따로 연기를 봐주냐'고 물어본다. 매일매일 대본을 보고 연기를 하고 맡은 책임이 있지 않나. 덕분에 시간 대비 많이 는 것 같다"며 겸손함을 드러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박한 바람도 전했다.
"시청자분들이 저를 보면서 '쟤 참 열심히 산다'는 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열심히 한다는 걸 인정해 주시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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