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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길채의 한복은 사계절이다"…이진희 의상감독, 한복의 비밀 (연인)

[Dispatch=김지호·정태윤기자] "그게 가능해요?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인데요." (남궁민)

MBC-TV '연인'의 주연배우, 남궁민이 놀라 물었다. 그를 당황하게 만든 사람은, 이진희 의상감독. 지난 20여 년 동안 대한민국 드라마와 영화계의 의상을 담당해온 베테랑이다. 

이진희 의상감독의 제안은, "모든 옷에 생활감을 주고 싶다"는 것. 평민들의 옷을 낡게 만들고, 전쟁 중 군인들의 갑옷에 부식감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가능한 미션일까. 무엇보다, '연인'은 드라마다. 20부작 사극이다. (이진희 감독 기준, 영화 1편의 의상은 드라마 2부의 양에 해당한다.)

게다가, 단역들 의상까지 모두 준비할 계획을 세웠다. 모든 원단을 직접 짜고, 염색한다는 것. 수천 벌의 한복에 영혼을 불살라야 가능한 일이다. 

김성용PD와 남궁민은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진희 의상감독은 꿋꿋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좋은 기회. 단 한 벌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디스패치'가 최근 '연인'의 명품 비주얼을 만들어낸 이진희 의상감독을 만났다. 그녀의 인생 전반을 사로잡은, 한복 이야기를 들었다.

◆ "웰메이드 뒤엔, 그녀가 있다" 

이진희 감독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품용 의상을 만들어왔다. 그를 소개하는 타이틀은 한복 디자이너, 무대미술가, 의상감독 등이다. 이 감독은 '의상감독'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소개했다. 

"일반적으로는 '의상 실장', '의상팀' 등 호칭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저는 '의상감독'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어요. 의상감독 역시 작품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이하 이진희 감독)

그의 주 전공은 한복.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영화 '간신' 등에서 조선시대 복식을 선보였다. 영화 '안시성'(2018)을 통해서는 고구려와 당나라 군사들을 현대로 소환했다.

박찬욱의 판타지 액션영화 '일장춘몽'(2022)에서 K-한복의 멋을 꽃피웠다. 현재 '연인'으로 대중에게 병자호란 전후의 한복을 선보이는 중이다. 

비하인드 하나. 원래 MBC는 사극 의상을 MBC 아트센터 의상팀이 전담한다. 제작 퀄리티도 탁월한 수준. 외주 작업을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게, 이 감독은 소문난 완벽주의자다. 그녀가 구현하는 한복은 국내 최고 수준. 그녀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연인'의 배우들 및 제작 관계자들은 "이건, 된다!"를 외쳤다는 후문이다. 

"김성용 감독님이 첫 미팅 당시 '전통 소재를 깊이 있게 쓰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재료들을 보여드렸더니 크게 만족하셨죠. 저와 함께 하기 위해 몇 달 간 본부를 설득하셨다 들었어요.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 한 벌의 의상이 탄생하기까지" 

"감독님. 이거, 저는 연기만 하면 되겠는데요?" (남궁민)  

이진희 감독은 남궁민의 첫 의상 피팅을 떠올렸다. 남궁민은 동대문에 위치한 이진희 감독의 의상 작업실을 찾아, 이장현의 옷들을 입어봤다. 결과는, 그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장현 그대로였다. 

의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이 감독은 "가장 먼저 대본을 받아들고 분석한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그 후 시각적으로 접근한다"고 짚었다. 

"의상은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야 합니다. 장현은 섹시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죠. 그러니 청색과 자색 등 깊이 있는 색감을 떠올렸어요. 또, '연인'은 길채의 성장 드라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황에 맞춰 사계절의 색을 담았습니다." 

그는 "대본을 바탕으로 톤 앤 매너를 정한다. '간신'처럼 색감이 강렬한 작품이 있고, '안시성'처럼 질감이 먼저 오는 작품이 있다"며 "이후 도식화 작업을 거치고, 원단을 준비해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가장 큰 관건은 원단이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원단은 대부분 (혼수의 유행에 따른) 미색"이라며 "광장시장에 전통의 유니크한 색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원단과 소재가 가진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통 원단들을 만드는 공장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그러니 원단을 다 직접 직조해서 만들 수밖에 없었죠. 원단을 준비하고, 염색하는 과정만 약 4달 걸렸던 것 같아요." 

이진희 감독은 조정 대신들의 관복을 예로 들었다. "남한산성의 신 자체가 임팩트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관복을 다 직접 짰다"며 "거칠게 짜고, 일일이 손 염색을 거쳤다. 깊이와 사실적인 느낌을 줬다"고 전했다. 

◆  "고증, 심혈을 기울였다" 

그 모든 것은 리얼리티를 위해서였다. 그도 그럴 게, '연인'이 보여줘야 하는 인간군상은 다채롭다. 양반, 평민, 예인, 왕조, 대신, 군사…. 게다가 청나라도 다뤄야 한다. 고증에 어긋나는 옥에 티가 보인다면, 몰입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극은 주조연만 새로 제작하고, 민복은 그대로 사용합니다. '연인'은 민복도 모두 만들었죠. 현재까지 2,000벌 이상을 제작했어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제가 진행했는데, 그보다 예산만 5~6배 이상이 투입됐습니다." 

그는 "생활감 작업이 쉽지 않다. 100평 창고를 빌려 두어 달 작업을 했다"며 "전쟁을 표현해야 하니 '안시성'의 수 배로 효과 작업이 힘들었다. 안료, 맥반석 가루, 숯 등을 이용해 빛 바랜 부분과 거칠게 뜯어진 느낌을 직접 다 냈다"고 토로했다. 

고증을 최대한 살린 아이템은 갑옷이다. "연준(이학주 분)의 두정갑, 장현의 가죽 조끼 갑옷, 청나라 병사 갑옷 등 모두 고증대로 만들었다. 겨울 갑옷이라 안에 토끼털을 써서 제작했다"고 알렸다. 

이날 이진희 감독은 조선시대의 갑주 '두석린갑'을 공개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두석린갑을 제대로 고증한 건 처음"이라며 "그 당시 재료와 똑같은 것을 쓰고, 무게도 비슷하게 제작했다. 정말 그대로 복원했다"고 뿌듯해 했다. 

다행히, 이 감독은 우리 전통 복식의 전문가다. 조선 초기 복식은 이미 도식화했고, 직접 교재도 만들었다. 헛갈리는 부분이 있다면 고증 자문과 머리를 맞댄다. 청나라 의상은 사료를 찾아 중국에 보내 고증을 체크했다. 이후 중국에서 제작했다. 

"중국 옷은 중국이 더 잘 만듭니다. 그렇다고 편한 건 아니죠. 사료를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언어의 장벽도 있거든요. 그래도 약식으로 하지 않았어요. 민병대 같은 경우, 프레스부터 만들었습니다. 금속을 찍어내야 하니까…."  

◆ "상상, 고증만큼 중요했다" 

이진희 감독은 고증만큼 중요한 것을, 창작자의 상상으로 꼽았다. 그는 "중요한 건, 고증과 상상의 중간 줄다리기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은 역사물이 나오면, 고증에 초점을 두고 늘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고증을 넘어선 창작자의 상상을 덧입히고 있어요. 최대한 고증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상과 고증 중 선택을 합니다." 

(참고로, 이 감독은 '안시성'을 내놓았던 해 대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고증 논란 때문이었다. 그는 이듬해 대종상을 수상했다. "고증과 상상 사이에서 새로운 한국 영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일례로, 유길채(안은진 분)의 배씨댕기. "길채의 어린 아이같은 모습을 캐릭터로 만들어주는 게 중요했다.그래서 댕기나 볼끼(털 귀도리) 등 귀여운 아이템을 쓰게 된 것"이라며 "이 역시 고증 자문과 충분한 상의 끝에 설정한다"고 소개했다.

'연인'에서 선보인 대신들의 흉배도 고증에 상상을 결합한 작품이다. "당대 대신들의 초상화를 보면, 인물들이 모두 배 위로 손을 올리고 있다. 흉배의 아랫 부분은 가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자문위에서도 흉배를 그대로 복원해본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힘들었죠. 때문에 문헌의 글로 유추해 아랫 부분을 구현했습니다. '연인'에서 가장 까다로운 의상 중 하나였어요."  

이 감독은 "홍타이지의 경우, 극적 요소를 위해 좀더 화려한 후대 의상을 사용했다"며 "청나라 포로사냥꾼도 변형을 택했다. 고증대로라면 치파오 형태라 몸에 달라붙어, 극적 느낌이 나지 않더라. 명나라 무사 옷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 "의상감독은, 무대의 예술가" 

구슬땀을 흘린 만큼, 찬사가 돌아오고 있다. 우선, 배우들의 자부심이 강하다. 안은진은 (극 초반부) 볼끼를 쓰고, 기뻐하며 뛰어다녔을 정도. 시청자 반응도 뜨겁다. 이 감독이 한땀 한땀 담아낸 열정 덕분이다. 

이진희 감독은 그의 대표작 2가지를 비교해 언급했다.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이다. 

"성균관 때는 세련된 한복을 보여주고자 했고요. '구르미'로는 한복의 트렌디한 아름다움을 어필하고자 했습니다. 그해 '팬톤'의 컬러였던 핑크를 적극 사용하는 식이었죠. '연인'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통 그대로의 소재와 컬러를 썼습니다."

그는 "MZ세대가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것을 자랑스럽게 즐길 수 있는 세대"라며 "굳이 예쁜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그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 판단했다. 그 생각이 맞았다"고 기뻐했다.

"연인 초반에는 영혼이 다 털리는 느낌이었어요. 양이 워낙 많았고,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었거든요. 그러나 시청자 분들께서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우리 전통의 것을 더 써도 되는구나 싶어 신이 났죠."

이 감독이 선보이는 시즌2는 어떨까. "청나라 왕조의 화려한 의상들이 등장한다. 시즌1처럼 단단하고 힘이 있는, 우리 고유의 소재를 쓴 의상도 계속해서 나온다. 그 아름다움에 집중해 봐주시면 또 하나의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연인' 이후로도 바쁘게 한복을 전파할 예정이다. 진주시와 함께 '연인' 한복 전시를 연다. 직접 론칭한 한복 패션 브랜드 '하무'의 국제 패션쇼도 조율 중이다.

"20대 시절, 한복이 가진 본질적인 힘들에 빠져들었어요. 그 후로 한복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죠. 앞으로도 우리 전통 의상으로 대중예술을 펼치려고 합니다."

<사진=정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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