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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또, 새롭지 않을 수 없다"…박정민, '전,란'의 전운

[Dispatch=정태윤기자] "저는 동어반복 하기 싫거든요." (박정민)

서번트 증후군(그것만이 내 세상), 성전환을 못한 트렌스젠더(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코믹한 악역(밀수), 강직한 독립 운동가(동주), 현실 직장인 연기(지옥)까지.

14년간 무려 46작품을 했다. 하나 같이 다르고, 비슷하지가 않다. 늘 다른 얼굴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번에도 새롭다. 첫 사극에 도전했다.

친근한 얼굴 대신, 멋있는 얼굴을 드러냈다. 권세 높은 무신 출신 양반가의 외아들이다. 화려한 검술 액션도 선보인다. 무림 고수 강동원(천영 역)과 겨룬다.

여기에 배신의 아픔, 복수심, 용서 등 다채로운 감정을 그린다. 이번 변신도 성공이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박정민은 다소 지친 모습이었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나, 하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불안해요. 저 자신을 다스리고 한텀 쉬면서 생각해 봐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고, 다작하는 배우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고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처방은 흔치 않았다. 밀려 들어오는 대본을 애써 거절하고, 과감히 쉼을 택했다.

지칠 만큼 쏟아부은 그의 '전,란'을 들었다.

◆ 시대를 비추는 이야기

넷플릭스 '전,란'(감독 김상만)은 임진왜란 전후를 배경으로 엄격한 신분제를 비춘다. 권세 높은 무신 출신 양반가의 외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그의 몸종 천영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사람은 유년 시절부터 함께한 누구보다 가까운 동무다. 천영은 노비에서 면천되기를 갈망한다. 종려도 그를 도우려 하지만 여러 상황에 얽히며 관계가 악화된다.

종려는 극 중 가장 감정의 변화가 큰 인물이다. 우정, 오해, 배신감, 흑화 등 복잡다단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박정민은 이 부분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다.

그는 "양반이지만 양반답지 않게 천영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점점 변해가는 인물이다. 캐릭터적인 면에서 도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뚜렷한 메시지에 매료됐다. "계급이라는 건 옛날이야기로만 알았다. 사회에 나와보니 비단 옛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이 시나리오를 만나게 됐다"고 떠올렸다.

"완전한 평등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 시대를 빗대자면, 무의식적으로 나뉘어 있는 계급 사회 안에서 어떤 걸 양보하고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 이야기하려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 "연기는 정석대로, 감정은 현장에서"

첫 사극이다. 박정민은 그간 신선한 연기를 선보여왔다. 때론 카메라 앵글을 완전히 벗어나기도 하며 약속된 연기를 경계했다. 이번엔 달랐다. 최대한 정석으로 했다.

그는 "제멋대로 연기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워야 했고, (역할에) 어울려야 했다"며 "2시간 안에 널뛰는 감정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 더 치밀히 연기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때론 유연하게 변모했다. 하이라이트 해무 액션신은, 현장에 맡겼다. 천영과 종려 그리고 적장(정성일 분)이 뿌연 안개 속에서 서로를 향해 목숨을 걸고 칼을 휘두른다.

특히 박정민에겐 어려운 신이었다. 검술 액션뿐 아니라 천영을 향한 7년의 분노를 담아 칼을 꽂아야 했다. 애증으로 시작해 용서로 마침표를 찍는, 급변하는 감정이었다.

박정민은 "그 장면만 일주일을 찍었다. 감정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갔다"며 "계산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냥 가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다"고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종려는 천영의 고백 한마디에 7년의 오해를 단번에 푼다. 대본 리딩 때부터 그게 가능할까 반문하고, 감독에게 되묻기도 했다. 그는 "마음 한구석에 천영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막상 현장에서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흥분된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니까 그 감정이 나오더군요. 넋이 나가버렸죠. 마지막에 천영이 무릎 위에서 죽음을 맞으며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건 대본에 없었는데 저절로 나왔죠. 박찬욱 감독님도 만족해하셨고요."

"동어반복은 싫으니까"

'전,란'은 OTT 최초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공개 직후, 비영어권 부문 글로벌 3위(글로벌 톱10, 16일 기준)에 올랐다.

그 역시 만족감을 드러냈다. "제가 찍었던 영화가 맞나 싶었다. 현장에서 편집본도 안 보는 편인데, 결과물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확실한 스타일이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기 변신에도 성공했다. 여린 도련님에서 매서운 눈빛을 번뜩이는 무사의 얼굴로 변모하며 호평받았다. 그가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이었다.

"류승완 감독님이 영화를 보시고 '박정민한테 볼 수 없었던 얼굴을 꺼내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죠. 경력이 차다 보니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얼굴이 있잖아요. 그런데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작품마다 변신하고 싶다. 모든 배우의 바람이기도 하다. 박정민 역시 새로움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내년은 연기를 잠시 쉬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어반복은 싫거든요. 이미 한 것 같은 생각이 들며 불안합니다. 한계나 소진까진 아니고요. 조금 쉬면서 새로운 감정과 표정을 관찰하고 찾아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단단한, 쉼표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말하는 입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약점도 초조함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에 대한 해결 방안도 명확했다. 내년엔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가장 재미있는 일은 무엇일까. 뜻밖에도 1인 출판사 '무제'를 말했다. 그가 직접 기획과 작가 섭외를 하며 운영 중이다. 출판사 이야기를 할 땐 그의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그는 "이 일을 하는 취지는, 배려받지 못한 소외된 것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보자는 것이다. 올해 2권의 책을 냈다"며 "어떤 걸 만들고 소개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얹었다. "책방을 할 때도 너무 좋아해서 한강 코너를 만들어 놓을 정도였다"며 "시대를 뛰어넘는 감정과 정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 아파하고 울면서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당분간 쉼을 선언했지만, 이미 찍어놓은 작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 '뉴토피아', 영화 '얼굴', '하얼빈', '1승' 등 공개를 앞두고 있다. '휴민트' 촬영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저는 일할 때 재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현장을 좀 더 즐기려면 제가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한텀 쉬면서 저를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사진제공=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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