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소정기자] "부끄럽지만,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어요."(김우빈)
무도실무관. 2013년에 처음 생긴 법무부 소속 공무직이다. 전자발찌 대상자를 24시간 밀착감시한다. 보호관찰관과 2인 1조를 이룬다.
버디물에 강한 김주환 감독이 영화화했다. 겉만 보면 유쾌한 액션활극이다. 하지만 영화엔 숨은 뜻이 있다. 김우빈은 단번에 캐치했다.
"첫 미팅 때 감독님께 무도실무관들의 노고를 알리려는 마음을 담았냐고 물으니 맞다며 흡족해하셨어요. 그 순간 마음이 놓였어요."
김우빈의 진심은 통했다. 무도실무관이라는 숨은 영웅을 수면 위로 꺼냈다. 인력 부족, 열악한 근무 환경을 알렸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자발찌 착용자는 4,182명(7월 기준)이다. 반면, 이들을 전담하는 무도실무관은 165명뿐. 혼자서 25명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김우빈은 인터뷰 내내 무한 존경심을 표했다. "촬영 때 그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랑머리 이정도
강렬한 노랑머리. 떡 벌어진 어깨. 날카로운 눈매. 누가 봐도 싸움꾼이다. 살벌한 피지컬이지만, 입 열면 반전. 이정도는 '애는 착해'의 표본이다.
이정도의 삶은 단조롭다. 그가 좇는 재미는 단순하다. 아버지 치킨집에서 배달을 하고,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게 낙이다.
욕심도, 분노도 없다. 언제나 즐겁다. 사실 그는, 무서운 스펙 보유자. 태권도, 검도, 유도까지 도합 9단 실력파 유단자다.
어느 날, 그 스펙을 발휘할 순간이 찾아온다. 위기에 처한 무도실무관을 구하게 된 것. 다친 그를 대신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김우빈의 첫 고민은 비주얼이었다. 이정도가 실제 존재한다면, 어떤 외모일까. 일단 길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을 관찰했다.
눈에 띈 건 탈색머리. "탈색한 분들이 꽤 많더라. 제 삶에서만 새로운 거였지, 일상적이더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무도실무관'은 이정도의 성장 드라마다. 직업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사명감과 정의감을 키워나간다.
정도는 그렇게 정도(正道)를 걷게 된다. 재미의 가치가 달라졌다. 내면의 성장을 통해 진짜 삶의 행복을 느낀다.
"저는 이 영화에서 정도의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액션물이지만 드라마 장르라고 봤거든요. 정도가 깊은 마음으로 무도실무관을 시작한 게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거잖아요. 그런 변화를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 숨은 영웅
이정도의 멘토는 보호관찰관 김선민(김성균 분).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심하게 선하고 따뜻하다. 악덕 성범죄자들 앞에서도 절대 먼저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김성균은 현장에서도 선민 그 자체였다. 김우빈은 "저는 성균이 형을 안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1명도 못 봤다. 정말 좋은 어른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치켜세웠다.
김우빈과 김성균은 보호관찰소도 견학했다. 처음엔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의 설렘이 컸다. 그러나 현직자들을 만난 뒤,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된 일이에요. 감정이 앞서면 안 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해요. 응징이 아니라, 유사시 제압을 하는 정도의 일이니 거기서 오는 어려움도 많고요.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현직자에게 들은 비화도 물었다. 김우빈은 정중히 사양했다. "어떤 개인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라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다. 양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영화는 '무도실무관'의 노고를 고스란히 담았다. 관객들도 그 의도를 그대로 읽었다. 김우빈이 추석 내내 찾아본 관람평도 대부분 그랬다.
"'그분들의 노고를 알게 됐어요, 고맙다'는 댓글이 뭉클하더라고요. 감독님도 그런 의도로 작품을 만드셨고요. 그 마음을 관객분들이 알아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 행복을 찾아서
김우빈의 차기작은 '다 이루어질지니'다. 김은숙 작가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물로, 수지와 호흡을 맞춘다.
이번에도 김은숙의 찰진 대사가 일품이라고 단언했다. "난리 난다. 시나리오를 보면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귀띔했다.
김은숙과는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그리고 '다 이루어질지니'까지. 김은숙의 N차 러브콜 소감도 물었다.
김우빈은 "행복한 일이다. 너무 팬이고, 작가님 작품을 많이 봐서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 작가님 뭔가 통하는 게 있다. 그래서 믿고 맡겨주시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감동 일화도 전했다. "'신사의 품격' 촬영 후 작가님한테 연락이 왔다. '너는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아. 동협이 잘해줘서 고마워'라고 하셨는데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라고 떠올렸다.
김우빈은 '투병 생활'로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 그는 지난 2017년 비인두암 발병, 2년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때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생각들이 달라졌다. 아플 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보니 변화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우빈은 "예전엔 미래에 살았고, 목표를 위해서 살았다. 저를 채찍질하며 지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을 갖게 됐다. 그 시간에 되돌아보니 저를 너무 혹사시켰더라"고 말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즘 실천하는 게 대화하는 사람 얼굴을 더 자주 쳐다보는 거다. 상대에게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제가 더 잘산 것 같고, 그러면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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