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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아닙니다만"…잔상이 남는 배우란?

[Dispatch=김소정기자] "너는 내 자존심이야."

영화 '써니'(2011) 촬영 중, 강형철 감독이 배우 천우희에게 남긴 찬사다. 천우희가 이 말을 듣는 데는 꼬박 7년이 걸렸다.

무명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2004년 데뷔해 단역으로 2작품, 조연으로 2작품, 독립영화 1작품이 전부였다.

'써니' 이후, 보란듯이 훨훨 날았다. 상업, 독립영화 가리지 않고 연기력을 마구 분출했다. '한공주'의 공주, '곡성'의 무명, '멜로가 체질'의 진주까지…

천우희의 강점은,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다는 것. 그의 캐릭터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물론 강렬한 캐릭터만 일부러 고집한 건 아니다. 천우희라서, 천우희니까 달랐을 뿐이다.

"예전부터 제게 가장 좋은 칭찬은 '얘가 얘였어?'였어요. 제가 배우로서 만족감이 들 때도, 제 모습은 없고 그 인물 자체로 비춰질 때예요."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8층

이번에도 새롭다.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에서다.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천우희는 8층 역을 맡았다. 최상위층이다. 운 좋게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린다. 오직 돈만을 원하는 참가자들과는 다르다. 온갖 자극에 목말라 있다.

천우희는 "대본을 읽고 저한테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겠다 싶었다. 계획했던 것들을 다 벗어던지고 직관과 본능에 따라 연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8층에게 그곳은 도파민 파티. 참가자들은 시간과 돈을 모으기 위해 밑바닥까지 보여준다. 8층은 참가자들의 고통을 즐긴다. 그러면서 인생 처음 쾌락과 희열을 맛본다.

남의 괴로움에 웃는 자. 까딱하면 비호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천우희도 분명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완급 조절이 필요했다.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니 고민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바라는 방향, 준비한 설정, 동료배우들의 호흡을 더해 비호감이 아닌 파격으로의 줄타기를 잘 해나가려고 노력했어요."

◆ 송세라

8층의 정체는 '더 에이트 쇼' 후반부에 공개된다. 이름은 송세라. 직업은 행위 예술가다. 아무도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 천우희는 '사회부적응자'라 표현했다.

천우희는 "바깥에선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쇼 안에서 권력을 손에 쥐고,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게 쾌감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에이트 쇼'는 현대 사회의 계급과 불평등을 그려낸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숨겨진 인간의 폭력성도 드러낸다.

결말은 어떨까. 냉혹하다. 아니 솔직히 불편하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8층은 어떠한 벌도 받지 않는다. 천우희는 "현실적이라, 부조리함이 더 강조됐다"고 평했다.

8층은 1층 장례식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8층의 이야기는 8층다워서 만족한다. 사실 모든 인물이 장례식장에 모이는 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만약 천우희가 이 쇼에 초대된다면? "저는 겁이 많아서 절대 안 할 거다.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피폐함을 겪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불가피하게 참가한다면? 한참을 고민했다. "그럼, 침대부터 사서 누워 있고 싶다"며 웃었다.

◆ 천우희

'더 에이트 쇼'가 공개된 시기에,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방영됐다. 천우희는 발랄하면서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도다해를 연기했다. 8층과 비슷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다.

넷플릭스에선 두 작품 모두 상위권에 랭크됐다. 더블히트를 친 것. 무엇보다 천우희를 기쁘게한 건, 순위보단 대중의 반응과 평가였다.

"두 작품이 넷플릭스 순위에 같이 올라와 있는 걸 보신 분이 남긴 댓글을 봤어요. '동일인물 맞냐, 한 사람이 연기한 게 놀랍다'는 내용이었는데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천우희는 올해로 데뷔 20년차 배우다. 세월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하려면 아직 앞이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천우희에게 '배우'는 평생 직업이다. 다른 직업은 꿈꾼 적도 없다. 물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후회한 적도 없다. 오직 전진만 생각할 뿐이다.

"저는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요. 저는 배우를 평생 하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 제 방향성을 가지고 그 영역들을 확장시켜 가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싶어요."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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