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다은기자] 슬랜더 몸매에 동글동글한 얼굴형, 그 중앙에 위치한 코 찡긋 미소는 그의 가장 사랑스러운 치트키다. 첫사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 배우 김고은이다.
그만큼 다양한 청춘의 얼굴을 맡아왔다. '치즈인더트랩'부터 '유미의 세포들', '유열의 음악앨범' 등 20~30대의 사랑과 꿈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이번에도 같은 청춘일까.
그와 반대로,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 뒤 불완전하기에 쉽게 흔들리는 청춘의 뒷모습을 꺼냈다. 김고은은 "20대 초반 혼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생각들이 있다. 그 고군분투를 떠올렸다"고 했다.
"청춘은 누구나 겪지만 아름답고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죠. 가장 불안하고 불안전한 시기가 20대라고 생각해요. 사회에 내던져지는데, 아는 건 없고 성인이기 때문에 뭔가 해내야 하잖아요."
김고은은 "이 영화로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니까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치열했던 20대를 지나 어느덧 30대를 맞이한 그녀의 해사한 웃음이 청춘에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 "우리는 각자 다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특별한 사랑법을 그린다. 눈치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 분)와 세상에 거리 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 분)가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우정 서사가 118분 동안 펼쳐진다.
김고은이 처음부터 끌린 이야기였다. 그는 "처음 대본을 보고 후루룩 읽혔다. 두 인물의 13년 서사에 담겨 있는 성장통과 시행착오, 성장 과정이 굉장히 잘 그려져 있었다"며 "귀한 작품이었다"고 첫인상을 떠올렸다.
김고은이 맡은 인물은 재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지만 누구보다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안다. 특히 가족조차 외면하는 게이인 흥수를 가장 온전히 품고 바라보는 친구다. 두 남녀의 동거 일기 사이에는 로맨스는 없다. 오직 우정만 있을 뿐이다.
낯설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에 매료됐다. 김고은은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소재에 불편한 분들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삶, 정체성이 있듯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며 "다름에 대한 존중에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모두 '다름'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니고 각자의 다름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다름을 늘 존중받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영화는 '어떻게 올바르게 내 다름을 표현하는가'를 고민하게 해주는 것 작품입니다."
재희가 흥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 김고은 또한 촬영 내내 작품 그 자체에 집중했다. "주인공들이 '다름'에 대한 올바른 표현을 해 나가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와닿았다. 우리네 삶을 그린, 현실에 발 붙여져 있는 이야기였다"고 표현했다.
◆ "오해, 그리고 이해하기"
김고은은 영화에서 재희 그 자체로 돌변했다. 그가 표현한 재희는 남들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늘 즉흥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 사랑 앞에선 누구보다 저돌적이고, 본능적이다.
캐릭터 첫인상부터 심상치 않았다. 김고은은 "처음에 대본 읽고 '아 진짜 얘가 왜 이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면서도 "연기할 때 사람들이 재희를 오해하지 않고 그 이면을 알게끔, 연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본에는 재희의 마음들이 적혀 있으니까 저는 재희를 오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재희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낙인찍을 수 있겠다 싶었죠. 재희의 행동에 궁시렁거리기도 했죠." (웃음)
그만큼 재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강의실 단상 위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가 하면,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보도블록에 앉아 담배를 핀다. 김고은은 인물의 성향에 맞춰, 몸의 쓰임도 과감하게 가져갔다.
"재희의 태도가 조심성 없어 보이면 좋겠다고 여겼죠. 지나가다가 목이 마르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마시는 등 갖춰지지 않은 태도를 갖고 있는 아이로 생각하고 다가갔습니다."
재희의 결핍을 연기할 땐, 특유의 설움 연기가 폭발한다. 상대에게 늘 자신이 1순위이길 집착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김고은은 "결국엔 재희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깨닫고 발전한다"며 인물에 위로를 건넸다.
◆ "재희, 김고은을 닮았다"
누군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봐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단연 김고은의 사랑스러움이 답이다. 김고은의 모든 매력이 100% 농도로 담겼다. 담백하고 현실적인 연기로 캐릭터를 집어삼켰다.
사실 닮은 점이 많았기에 몰입이 어렵지 않았다. 먼저 나이부터 같았다. 그는 "저와 재희가 학번도 10학번으로 같아서 그 자체로 반가웠다"며 "대학 시절 쓰던 아이폰도 손에 다시 쥐니까 기분이 좋았다"고 떠올렸다.
극 중 재희는 파리에서 오랜 학창 시절을 보낸다. 김고은도 어린 시절 중국에서 10년의 유학 생활을 경험했다.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문화와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청소년기까지 중국에서 살고 왔다 보니 스스로 충돌하는 것들이 많았다"며 "'왜 다 똑같길 바라지' 같은 질문이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잘못된 것처럼, 별나다는 인상을 주는 게 억울했다"고 토로했다.
재희를 연기하면서도 그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하지만 김고은은 털털하게 그 시간을 정의했다.
"20대에 경험한 저만의 충돌이었던 것 같아요. 재희도 자신의 특별함을 버리고 현실에 타협하며 시행착오를 겪잖아요. 저의 20대도 나를 잃지 않으며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을 찾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 "우리 모두, 실수하니까"
총 13년의 얼굴을 연기했다. 풋풋한 20살의 재희부터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30대의 지친 재희까지 그렸다. 현실에 치혀 스스로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변화와 삶을 가장 정확하게 그렸다.
그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였으면 했다. '나도 고민이 있어' 공감해 주는 작품으로 다가갔으면 했다"며 "편견과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큼 생각은 강요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관객들이 스크린 밖으로 나가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똑같이 실수하고 당신만 그런 거 아니니까 괜찮다'와 같은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김고은의 의도가 정확히 들어맞은 비결은 '나다움'에 있었다. 그는 "나다움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나온다. 현장에서도 편안함의 상태를 찾으려고 스스로 무던히 노력했다"고 답했다.
"제가 언제 편안한지 계속 집중해요. 그럴 때 저의 본연 매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도 제가 준비한 것들을 가장 헤매지 않고 할 수 있는 (비결이자), 실수를 줄이는 방법인 것 같고요."
김고은은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까지 얻었다. 그는 "자신의 다름을 얼마나 올바르게 표현하는지가 어른을 정의하는 기준인 것 같다"며 "저는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멀었다"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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