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인생이 바닥을 칠 때,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한 가닥 희망을 찾습니다. 그 기대가 이뤄지면 좋고, 아니면…. 춘희 삼춘 말대로 "아님 말고" 하며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
노희경 작가가 하고 싶은 응원, 바로 "살아 있는 모두, 행복하라"는 것.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뜨거운 위로를 전했습니다.
노희경 작가와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드라마로,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1. 노희경 작가
"노희경 작가는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한 네티즌이 유튜브 영상에 적은 댓글입니다. 100%, 아니 10000% 공감합니다. 저도 모르게 '좋아요'를 누르고 있더군요.
다운증후군(영희), 청각장애(별이), 자폐(혜자 삼춘 손자), 우울증(선아)…. 작가님은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그) 가족들에게, 배려 받지 못하는 (모든) 우리들에게 위로를 전하셨습니다.
어떤 드라마는 일차원적인 막장으로 시청자를 힘들게 합니다. 선악이 흑백 마냥 구분된 납작한 캐릭터들에 질릴 때도 많고요. 배우들의 과한 연기가 불편함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작품은 깊었습니다. 찬찬했고, 다정했습니다. 배우들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살아 움직였죠. 캐릭터와 이야기에 억지가 없으니, 마치 우리 옆에서 숨 쉬는 느낌었습니다.
2. 김규태 PD
푸릉마을을 아름답게 완성한 김 감독님, 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 푸릉마을과 바다는 너무도 정겨웠습니다. 살림집 소품 하나, 배경 하나 허투루 하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시장도 현실 그대로였죠.
김 감독님의 섬세함에도 감탄했습니다. 촬영하며, 단편 영화 여러 개를 찍는 기분이셨다면서요? 실제로 각 에피소드마다 미묘하게 감성이 달라지더군요.
예를 들면,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의 이야기. 귀엽고,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연출로 가득했습니다. 시청자가 사회적 약자를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신경쓴 게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춘희 삼춘과 손녀 은기의 에피소드도요. 마치 '픽사'나 '디즈니' 같은 감성이 느껴졌습니다. 오징어배들의 불이 켜지며 달 100개가 되는 장면. 너무도 환상적이고 아련했습니다.
3. 이병헌
대미를 장식한 배우. '연기神'이라는 수식어는 결코 '과찬'이 아님었습니다. 평생 외로웠던 동석이는, 결국 너무도 선하고 정 많은 남자였습니다.
불퉁한 얼굴과 퉁명스런 목소리, 몸빼 바지를 입고 무미건조하게 "골라 골라"를 외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주도에 가면, 꼭 동석이가 가판대 위에 있을 것 같아요.
이병헌 씨의 연기 백미는 (하나만 꼽을 수는 없지만) 한라산 신을 짚고 싶습니다. 시뻘겋게 붉어진 눈으로 옥동에게 보낼 영상을 찍는데, 그 무뚝뚝한 얼굴에 애증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 그 영상을 보는 옥동을, 눈물 머금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신. 옥동의 죽음 앞에 감정을 억누르는 신. 결국 시신을 안고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물을 쏟는 신…. 그가 왜 이병헌인지 입증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4. 김혜자
김혜자 선생님. 아니 옥동 삼춘! 그 미련하고 답답했던 여자의 생애를 선생님 아니면 누가 표현하겠습니까?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꾸린 가정마저 잃고, 무식하고 소견이 좁아 아들에게 못할 짓을 한 엄마.
위암에 걸려 쓸쓸히 죽어가고, 아들 동석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초연한 그 얼굴이 너무 가슴아팠습니다. "미친년이 미안함을 알겠냐"고 (동석에게) 되묻는 장면에선 수십 년의 회한이 왈칵 쏟아져 나왔죠.
모든 엄마가 완벽할 순 없습니다. 엄마도 부족한 인간이니까요.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겠죠. 김혜자 선생님은 그런 못난 엄마의 이야기를, (캐릭터 특성상) 적은 대사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내셨습니다.
아들 동석이 본처 아들에게 도둑놈이라 욕먹는 장면. 그 얌전한 할머니가 다 쉬어 빠진 목소리로 "그간 식모살이한 값 내놓으라"며 고래고래 소리지를 때, 그 참담한 심정에 (시청자 입장에서도) 숨을 죽여야 했습니다.
5. 신민아
선아는 강인한 엄마가 아니라, 연약한 엄마입니다. 옥동 삼춘이 그랬듯, 선아도 아이에게 미안한 엄마죠. 우울증이 있고, 앞이 깜깜해지는 환상을 겪습니다.
신민아의 선아는, 미디어에서 흔히 그리는 '엄마'가 아니라 좋았습니다. 엉엉 소리내 울며 걸어갈 때는 어린아이 같았죠. 마치,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성장이 멈춰버린 소녀 그 자체였습니다.
우울증 극복 과정을 거치며, 신민아 씨의 연기도 미묘하게 결이 달라져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천히, 차분하고 성숙해졌습니다. 그래서였겠죠? 후반부, 오히려 동석에게 어른스럽게 조언해주는 모습도 자연스러웠습니다.
6. 고두심
고두심 선생님.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딱 춘희 삼춘 같았습니다. 덕분에 마치 떼쟁이 손녀 은기가 된 심경으로 춘희 삼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중환자 아들의 소식을 들은 순간. 절망해 손녀에게 "너희 아빠는 거짓말쟁이다"며 목놓아 우는 모습에서, 베테랑의 관록이 느껴졌습니다.
고두심 선생님께서 "수천 날을 빌었수다. 자식들 보낼 때마다.." 하며 나지막이 우는데, 드라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몰입되더군요.
7. 한지민
지민 씨가 걷는 길에 경의를 표합니다. 알츠하이머(눈이 부시게), 시각장애인(두개의 빛), 아동학대(미쓰백), 휠체어(조제), 다운증후군(우리들의 블루스)…. 지민 씨의 선택은 항상 사회의 약자를 향해 있었습니다.
촬영 1년 전부터 정은혜(영희 역) 씨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천천히, 또 깊게 다운증후군에 대해 알아갔다고요. 정은혜의 매력을 알아가고, 그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한 걸로 압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민 씨는, 대체불가였습니다. 영희가 아이에게 놀림당해 부모와 싸운 에피소드. 영옥이 정준(김우빈 분)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에서 울지 않은 시청자는 없을 겁니다.
영희의 그림들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은 또 어떻고요. 얼마나 울었는지, 잠긴 목으로 한 내레이션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담담한 목소리에서 아픔, 그리움, 사랑, 미안함, 죄책감 등 수많은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8. 정은혜
은혜 씨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은혜 씨가 연기한 영희는 정말 러블리했어요. 연기는 또 어찌나 자연스러우시던지, (캐리커처 화가지만) 전문 배우 같았습니다.
추운 날씨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며 그림을 그리는 장면. 그 속상한 얼굴에 영희가 느끼는 좌절과 영옥에 대한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직접 그려주신 그림들도 그저 감탄스러웠습니다.
가장 감사한 부분은, 다운증후군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정준의 대사처럼) 다운증후군 환자들에 대해 잘 모릅니다. 어떤 고충을 겪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이요.
은혜 씨가 몸소 보여주셨기에, 영희는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은혜 씨에게서, 영희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작품에서 뵐 수 있길 바랍니다.
9. 김우빈
김우빈 씨는 역시, 여심을 설레게 하는 배우입니다. 한지민(영옥)과의 로맨스는 '우블'의 힐링 포인트들. 김우빈 씨가 있었기에, 정준이 훨씬 멋져 보였습니다.
특히, 우빈 씨는 대사를 맛깔나게 소화하기로 정평이 난 배우죠. 이번에도 "나한테 이런 거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올거야. 누나(영옥)는 날 너무 하찮고 재수없게 봤어"라는 대사로 여심을 저격했습니다.
디테일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희를 처음 보고 당황한 얼굴도 그렇고요. 이후 솔직하게 "다운증후군 환자를 본 적이 없으니까"라며 사과하는 모습도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10. 차승원
'우블'의 스타트를 끊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진 한수 캐릭터는 우리 시대 아빠들의 표본입니다. 그 삶에 지친 까칠한 얼굴이 (은희를 속이려는데도)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자신의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애잔해하는 얼굴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담담하고 쓸쓸한 표정들이 한동안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11. 이정은
'우블'은 이정은 씨가 있어 더 풍요로웠습니다. 정은 씨는 시작의 <한수와 은희> 에피부터 다른 사람들의 에피까지, 계속해서 극을 이끌어가주셨죠. 푸릉마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였습니다.
정은 씨의 넓고 깊은 연기 스펙트럼에 반했습니다. 한수에게 설레고, 떨려하고, 배신에 화내고 울먹이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넘나드는 위험한(?) 열연도 매력적이었습니다.
12. 엄정화
엄정화 씨 표 고미란은 짧은 등장에도 임팩트가 강했습니다. 해맑게 제주도에 나타나, "의리!"를 외치고 신나게 노는 모습이 참 강렬했습니다.
미란은 언제나 인기 많고 당당하지만, 내면은 외로운 여자였습니다. 엄정화 씨라서 찰떡 캐스팅이었고, 엄정화 씨라서 납득 완료입니다.
하이라이트는 은희를 마사지해주는 장면이었죠? "내가 너 하나만은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되냐? 새끼야" 라고 투박하게 욕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13. 박지환
사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선 너무 웃겼습니다. 코믹이 전문인 줄 알았죠. (조폭 출신) 순대아방 인권이 버럭버럭 화를 내며 등장했을 때, 저도 모르게 장이수를 찾게 되더군요.
그때까진 몰랐습니다. 지환 씨가 그리는 아버지가 이렇게 눈물샘을 자극할 줄은요. "아빠가 늘 창피했다"는 아들 정현(배현성 분)의 말에 상처받아, 끝내 꺼이꺼이 우는 신이 너무 짠했습니다.
덧붙여, 지환 씨의 또 다른 명장면을 짚고 싶습니다. 죽어가는 옥동 삼춘이 국물 더 달라 하자, "아이고, 드시면 (병) 낫아"하며 방정맞게 어깨춤을 추는 신요!
14. 최영준
'우블'의 또 다른 수확은, 최영준 씨 아닐까요? 딸 영주(노윤서 분)의 임신 소식을 알고 무너지는 모습, 대단한 명연기였습니다. 차마 딸을 때릴 수 없어 자기 자신을 퍽퍽 치는 장면,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아! 호식과 인권이 무릎꿇고 화해하는 장면도, 일품이었습니다. 영준 씨가 울며 인권에게 "우리 영주 몸 간수 못했다고 욕했디. 사과하라" 하는 장면. 눈물 버튼이었습니다.
노희경 작가님이 그리고, 김규태 PD님이 색채를 입혔습니다. 14인의 배우들 외에도 수많은 푸릉마을 식구들이 '웰메이드'를 만들었죠.
미혼모 영주를 야무지게 연기한 노윤서, 듬직한 남친 정현(배현성 분), 못된 줄 알았지만 누구보다 정 많은 혜자(박지아 분) 삼춘, 청각 장애를 가진 별이(이소별 분)….
'우리들의 블루스'는 끝나지만, 그 여운은 아마도 오랜 기간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 (엔딩)
<사진제공=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