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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그가 이만희의 스승이다"…유재열, '싸이' 장인의 실체

[Dispatch=김지호·구민지기자] "모세스, 모세스, 모세스… 따따따따…"  

일명 '사무엘 천사'로 불리는 자가 방언을 터뜨렸다. 모세의 영(?)을 부르는 초혼 의식을 행한 것. 성경에 샤머니즘을 혼합했다. 

다음은, '삼손'을 자칭하는 17세 소년이 나섰다. 엄숙한 표정으로 모세의 말을 통역했다. 신도들은 이 놀라운 광경에 오열했다. (물론, 진짜 모세의 영혼이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장막성전은 말세에 아마겟돈 전쟁의 환란을 피하기 위해 마련된 밀실이다. 장막성전에 신도가 다 들어가면 세상은 불바다가 된다. (신도들이) 다시 나와 신천지를 이루고, 신도들은 왕이 되어 각 지역을 다스린다."

이 (17살) 소년의 이름은 유.재.열. 그가 이끈 종교 단체는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이다. 장막성전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의 전신. 現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 역시, 유재열의 신도였다.  

유재열은 1960년대 후반부터 약 20년간 장막성전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만희를 포함한 여러 신도들이 그를 고소했다. 사기, 공갈 등을 포함한 40여 개 혐의다. 

유재열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교주 자리를 내려놓았다. 장막성전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 것. 출소 후에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단, 사업 자금의 출처는 알 수 없다.

'디스패치'가 유재열의 근황을 확인했다. 현재 나이는 만 71세. 매일 논현동 J빌딩으로 출근한다. 이 200억 원대 빌딩의 주인은 J건설. 유재열 일가가 지배하는 가족회사다.

유재열은 한남동 UN빌리지 안에 있는 70억 원대 고급빌라에 산다. 그의 딸 가족도 UN빌리지에 거주한다. 딸은 지난 2006년 싸이와 결혼했다. 유재열은 싸이의 장인이다.

# 장막성전의 탄생 : "사이비는 사이비를 낳는다"

사이비의 역사는 반복됐다. 먼저, '호생기도원'. 김종규가 1964년 1월에 만든 사이비교다. 안수·안찰·방언 등으로 신도들을 미혹한 신비집단. 말세의 피난처가 호생기도원이라고 주장했다.

유재열은 김종규의 제자다. 그는 모친 신종순을 따라 호생기도원에 나갔다. '교회와 신앙', '현대종교' 등에 따르면, 유재열이 호생기도원을 드나든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유재열의 어머니 신종순은 중국 방언을 했다고 한다. 유재열은 고교 시절 기계체조 선수였다. 일본 원정 시합을 앞두고 일본어 방언을 받으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생기도원을 찾았다."

1965년 1월, 유재열은 호생기도원을 향하는 도중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 두 무릎을 꿇자 예수의 환상이 나타났다는 것.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예수) 네게 큰일을 맡기노리라."

유재열은 더욱 열심히 호생기도원에 다녔다. 학교 공부를 그만두라는 계시에 따라 중퇴, 기도 생활에만 전념했다. 그로 인해 방언, 강필, 통변, 계시의 은사 등도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종규는 1965년 경기도 과천 청계산 기슭으로 이주했다. (여성 신도와의 치정으로 쫓겨났다는 설도 있다.) 신도 50여 명이 김종규를 따라 옮겼다. 유재열의 가족 역시 과천행을 택했다.

김종규는 그곳에서도 여자 문제를 일으켰다. 젊은 여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한 것. 유재열이 이를 목격, 일부 신도를 데리고 이탈했다. '장막성전', 또 다른 사이비의 서막이다.

# 장막성전의 교리 : "내가 바로 책 받아먹은 자"

유재열은 1966년 3월 14일 경기도 시흥시 과천면 청계산 저수지 인근에 장막성전을 설립했다. 당시 유재열의 나이 만 17세. 스스로를 어린 종, 군왕, 선지자, 보혜사, 진리의 성령으로 칭했다.  

유재열의 부모도 큰 역할을 했다. 부친 유인구는 '임마누엘' 역을 맡았다. 유재열(삼손)과 함께 성경 속의 '두 증인'으로 나섰다. 모친 신종순은 개별 집회에서 모세에 빙의, 방언을 구사했다. 

장막선전의 바이블은, 요한계시록이다.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를 적은 책.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어 수많은 사이비 종교에서 애용(?)한다. 유재열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유재열은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을 다음과 같이 활용했다. 자신이 삼손, 부친이 임마누엘.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중략)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요한계시록 11:3~5) 

'두루마리 계시'도 유명한 일화다. 당시 유재열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1966년 3월 1일 환상 속에서 성스러운 두루마리를 먹었다. 그 후 두루마리를 입에서 다시 꺼내자 성경책이 됐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자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계10:9-10)

요한계시록은 신도들의 계급을 나누는 데도 활용했다. 먼저, 유재열은 부친을 포함한 7명의 천사를 조직했다. 그다음, 24장로, 48집사, 72문도 등을 구성했다.

# 장막성전의 사기 : "그날, 세상은 불바다로"

유재열의 하이라이트는 종말론이다. 그는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나오는 14만 4,000의 숫자를 악용했다. 종말이 다가오면 (자신을 믿는) 14만 4,000명만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14만 4천이니...> (계 7:3~4)

유재열은 공포를 조장했다. 전국 각지에서 청계산으로 모여들었다. 14만 4,000명 안에 들기 위해 집과 재산을 아낌없이 팔았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 장막성전 입주자는 5,000여 명이다.  

천당행 티켓도 만들었다. 유재열을 포함한 7천사의 동맥을 면도칼로 잘라 피를 냈다. 그걸로 십자가를 그려줬다. (그러나 일부 자료에는, '돼지피'라는 설도 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반문. "누가 그걸 믿어?", 혹은 "왜 빠지는 거야?". 유재열은 자신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일종의 신화(?)를 만들었다. 종교 연구가들은 이를 '신비체험'이라 설명한다.

다음은, 유재열이 내세운 신비체험이다.

"1966년 3월, 유재열이 운동을 하고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태양 빛이 강렬하게 비추었다. 유재열이 깜짝 놀라 몸을 씻다 말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태양 빛이 유재열을 따라 들어왔다.

유재열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사람들은 죽은 줄 알았다. 그때, 유재열의 부친은 환상이 보인다고 말했다. 유재열이 누운 채로 두루마리를 먹었고, 다시 종이를 입안에서 끄집어냈다는 것.

유재열은 그 책을 펼쳐보며 눈물을 철철 흘렸고, 또 한 장을 넘기더니 이마를 찌푸리면서 인상을 썼다. (주님의) 심판 광경을 봤기 때문이라는 주장. 27명의 신도 중에 일부가 목격했다"

# 장막성전의 갈등 : "재림예수가 구속됐다" 

유재열의 종말론은 통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는 신도들의 성금으로 사리사욕을 채웠다. (신도) 건축물을 담보로 잡아 유흥비로 탕진했다. 공장을 빼앗기도 했다.

다음은, 과거 유재열과 장막성전을 다룬 보도의 일부다. 

<유씨는 자신을 '감람나무순', '천사', '선지자', '군왕'이라 칭했다. 그는 "군왕의 말에 순종하는 자는 세상의 종말이 와도 죽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포교했다. 전국적으로 2천여 명의 신도를 모아 청계산 중턱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신도들의 노역으로 연 건평 8백여 평의 성전(교회)과 교주 유씨의 호화주택을 지었고, 신도들이 거둔 성금으로 고급승용차를 타고 요정과 나이트클럽 등에서 술과 여자로 향락을 일삼았다는 것.> (동아일보, 1975년 4월)

<유씨는 지난 70년 4월 신도 박은희 씨(60, 당시 장로)에게 교회 빚 때문에 수표가 부도나게 됐다고 속여 다이아몬드 1.2캐럿(시가 1백50만 원)을 받아 1백만 원에 잡혀 유흥비로 써버렸다. 71년 3월 신도 박종화(40,여) 소유인 서울 용산구 청암동 소재 대지(1백50만 원 상당)를 같은 방법으로 1백만 원에 저당잡혀 유흥비로 써버리는 등 2천여만 원을 뜯어낸 혐의다. 또 장막성전이 사이비종교단체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무마비 조로 신도들로부터 1천여만 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1975년 9월)

유재열은 신도들의 돈, 땅, 땀으로 향락을 즐겼다. 반대로, 장막성전이 있는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 2리의 300여 가구에서 20여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검찰 수사 결과)

유재열이 예고한 '그날' 역시 오지 않았다. 그가 지목한 세상의 마지막 날, 1969년 11월 1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게 거짓이었다.

수많은 이탈자가 발생했다. 일부 신도들은 유재열을 고소했다. 그중 1명이 바로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다. 그는 1971년 9월 7일 "1967년 장막성전에서 전 재산을 다 털렸다"며 유재열을 고소했다. 

유재열은 1975년 <사기 공갈 무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유재열은,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사업가로 변신했다. 건설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사업을 펼쳤다. 현재 유재열 일가의 자산은 수백 억 원 대로 추정된다.

# 신천지의 탄생 : "배멸구, 이만희가 구원자" 

유재열은 '장막성전'을 만들었다. 그는 종말론을 내세웠다. 물론, 그날은 오지 않았다. 이만희는 '신천지 장막성전'을 세웠다. 그 역시 종말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날을 '콕' 지정하진 않았다.

유재열은 이만희의 스승이다. 그들이 종교를 세우는 과정도 비슷하다. 유재열은 '호생기도원' 교주 김종규를 쫓아냈고, 이만희는 '장막성전' 교주 유재열을 몰아냈다. '배도'와 '멸망', '구원'의 반복이다.

'두 증인' 부분도 닮았다. 유재열은 자신과 부친을, 이만희는 본인과 홍종효를 '두 증인'으로 내세웠다. (단, 이만희와 홍종효는 서로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다 싸우고 갈라졌다.)

유재열과 이만희 모두 '두루마리' 에피소드를 애용했다. 하나뿐인 '성서'를 (각각) 받아먹었다는 것. 1260일간 예언할 것이며, 14만 4,000명을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도 똑같다.

유재열이 자신을 '어린 양', '보혜사', '성령'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만희가 자신을 '보혜사', '이긴 자', '어린 양'이라 설명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만희는 유재열을 비판하면서도 그를 따라 했다.

'이단연구가' 진용식 목사는 '디스패치'에 "장막성전은 기독교 교리를 주술적 신앙과 혼합시킨 이단"이라면서 "유재열은 신도들의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운 사이비 교주였다"라고 설명했다.

진 목사는 이어 "이만희는 장막성전의 벽돌을 쌓는 미장이었다. 유재열에게 무임금 착취를 당해 고소했다"면서 "이만희는 신천지를 만들면서 보고 배운 것을 응용, 발전시켰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진용식 목사가 '이만희 실상교리의 허구'에서 지적한 두루마리 계시다.

"유재열은 17세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서 원문을 받아먹었다고 한다. 계시록 10장의 책은 1권이기에 이만희가 받아먹을 책이 없다. 이만희는 (장막성전 신도 시절) 유재열이 책 받아먹은 것을 인정했다. 따라서 이만희가 다시 책 받아먹었다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 유재열의 현재 : "강남 스타일의 자산가"

유재열이 외치던 마지막 날. 1969년 11월 1일은, 평범한 하루였다. 종말은 오지 않았다. 대신, 유재열은 6년 뒤에 사기, 공갈, 무고, 폭력 행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사이비 교주는 몰락했을까.

'디스패치'가 유재열의 근황을 포착했다. 그는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J빌딩으로 출근했다. J빌딩은 J건설의 소유. J건설은 아들이 대표이사, 딸이 감사로 있는 가족회사다.

'디스패치'가 확인한 유재열 일가의 재산은 엄청나다. J빌딩의 경우 부지만 325평.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 빌딩 시세로 따졌을 때 최소 200억 원 이상이다"고 전했다.

유재열이 살고 있는 집은 한남동 L하우스. 지난 2018년, 64억 원을 주고 매입했다. (등기상) 주인은 아내. 그들은 청담동에도 154평(부지) 규모의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강원도 평창에는 자녀 공동명의의 땅이 있다. 제주시 연동에도 건물이 있다. 해당 건물과 옆 건물, 그리고 건물 사이의 주차장도 유재열 일가의 재산이다.

(유재열은 지난 2016년 제주도 건물로 구설에 올랐다. 당시 임차인은 "유재열의 사위인 싸이가 음식점 홍보를 도와줄 거라 속였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이비 교주는 몰락하지 않았다. '그 날'이 오지 않아, '그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반대로, 장막성전 신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돈과 땅, 땀을 갖다 바쳤다.

<홍 씨는 장막성전 근처에서 D공장을 경영했다. 교주 유 씨와 집사 임 씨가 69년 4월 공장을 교회에 양도할 것을 요구했다. 홍 씨가 이를 거절하자 갖은 협박과 회유로 빼앗았다. 종업원들에겐 하느님 사업 운운하며 한 달에 겨우 2,000~3,000원씩의 봉급만을 정했다. 그나마 월정헌금 십일조 (1달 수입의 10분의 1을 내라는 것), 감사헌금, 특별회비, 부녀회비 등 명목으로 노임을 착취했다. 그렇게 1달 봉급을 고작 100~200원 지급했다.> (동아일보 1975년 4월)

신천지를 믿는 것은 자유다. 이만희를 따르는 것도 자유다. 다만, 아는 만큼 보인다. 신천지의 전신은 장막성전이다. 이만희의 스승은 유재열이다. 그리고 유재열은 사기 범행 이력을 갖고 있다.

<디스패치는 '장막성전' 피해사례를 제보받습니다. 부의 축적 과정에 대한 제보도 기다립니다. jebo@disp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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