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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비에른 안드레센(Björn Johan Andrésen)은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 Björn Johan Andrésen>에 등장하기가 무섭게 세계적으로 수많은 여성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답니다.
<베니스에서 죽다>는 루치노 비스콘티가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비에른 안드레센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답니다.
▲ <Death in Venice>에서 뒤를 돌아보는 비에른
영화 <Death in Venice>의 남자주인공 아센바호와 비슷한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답니다. 감독이 찾는 배우는 폴란드 사람이 아니라 스웨덴 사람이었다는데요.
게다가 무조건 소설 속 주인공과 아름다움의 우열을 가릴 수 없어야 되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답니다.
제작진은 많이 배우를 찾았고 스튜디오에서 수많은 오디션을 봤답니다. 하지만 비에른이 나타날 때까지 마음에 든 사람은 없었다네요.
타지오 역할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었답니다. 비에른은 많은 대사를 외울 필요도 없었고 그냥 조용히 애매한 표정을 짓고 몸의 우아함을 보여주면 됐답니다.
비에른은 영화에 캐스팅 된 후 스웨덴에서 무료로 놀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바로 출연에 동의했답니다. 하지만 바로 타지오 역할 때문에 비에른의 배우 인생은 망가졌다는데요.
비에른은 타지오가 됐고 사람들의 눈에 비에른은 곧 타지오였답니다. 때문에 비에른은 좋든 싫든 타지오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죠.
비엔른 15살 때 이 영화를 찍었답니다. 사람들이 아센바흐와 타지오의 애매함을 동성애로 이해했답니다.
이렇게 영화를 잘 찍었다면 실제로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죠. 제작진은 이런 오해에 대해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오해를 하게 만들었답니다. 제작진 대부분은 모두 동성애자였답니다. 1971년 모두 칸 영화제에 참석하게 됐다는데요.
젊은 비에른을 게이 클럽으로 데려갔답니다. 비에른은 많이 당황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답니다.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 연예인 인생이 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훗날 비에른은 자신 역시 신기해서 동성애를 한두번 해봤다고 고백했답니다. 당시 북유럽에서는 젊은 청년들 사이에 동성애가 매우 유행했답니다.
사람들 모두 비에른에게 관심을 가졌답니다. 하지만 비에른은 동성애를 경험한 후 자신은 여성만을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하지만 그의 해명을 들어준 사람은 없었답니다. 그의 예쁜 얼굴은 잘 팔리는 상품일 뿐이었답니다.
Germaine Greer 는 비에른의 사진으로 자신이 제작한 화보집 <The Beautiful Boy>의 커버로 쓸 때도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답니다.
Greer 가 이 책의 목적은 여성들에게 남자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어죠. 대부분 독자는 게이들이었답니다.
각종 소문은 비에른을 곤혹스럽게 했답니다. 그의 배우 인생도 <Death in Venice> 이후멈춘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에게 주어지는 배역은 모두 비에른이 출연하기 싫은 동성애자나 미소년 역할이었답니다.
1971년과 1972년 비에른은 일본에서 다시 재기를 꿈꿨답니다. 때문에 두번이나 방문했죠.
일본 팬들은 그를 매우 환영해 줬답니다. 그러나 미디어 등에서 옷을 골라주고 사진을 찍을 때면 어김없이 타지오처럼 꾸몄답니다.
1972년 16살의 비에른은 키도 커지고 외모도 많이 성숙해졌답니다. 하지만 사진 작가는 아직도 15살의 모습을 유지하면 좋겠다고 했죠.
일본에서 광고를 찍으며 살던 비에른은 자신과 일본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노래 두곡을 녹음한 뒤 일본 팬들에게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답니다.
비에른은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본 만화에는 큰 영향을 줬답니다. 훗날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미소년 캐릭터의 DNA를 제공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네요.
영화를 포기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피아노 선생님이 됐답니다. 가끔 극장에서 눈에 안 띄는 역할을 맡기도 했답니다.
생계를 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아니어도 됐던 것이죠. 그는 시인 수잔나와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았답니다.
아들이 죽은 후 아내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비에른과 잠시 별거를 하기도 했답니다. 비에른이 다시 대중들 앞에 나섰을 때 그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 있었답니다.
그에 대한 소개도 배우가 아니라 스웨덴 밴드 Sven Eric's Dance Band 의 연주자였다네요.
그때의 인기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죠. 하지만 비에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만년 소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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