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이 관계성은 만점입니다." (박은빈)
배우 박은빈이 처음 보는 얼굴을 꺼냈다. 스승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얼굴에 침도 뱉는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폭주한다.
설경구는 조용한 광기로 돌아왔다. 미세한 얼굴 떨림도 연기했다. 차갑고 속을 알 수 없는 스승으로 분했다. 함께 치열히 투쟁하며 깊은 상흔을 남긴다.
두 사람이 대립하면 할수록, 케미 점수는 올라갔다. 이들의 거침없는 에너지에, 현장은 매 순간 숨을 죽였다.
김정현 PD는 "진짜 미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뒤로 갈수록 감정의 정도가 쌓이고 폭발한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며 예찬했다.
디즈니 플러스 새 시리즈 '하이퍼나이프'(각본 김선희, 연출 김정현) 측이 17일 콘래드 서울에서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박은빈, 설경구, 윤찬영, 박병은, 김정현 PD가 자리했다.
'하이퍼나이프'는 메디컬 스릴러다.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박은빈 분)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설경구 분)와 재회하며 펼쳐지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다.
김정현 PD는 "다양한 캐릭터가 만나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다"며 "잔혹 동화 같은 느낌이다.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은빈이 '정세옥' 역을 맡았다. 세옥은 17살에 의대에 입학한 천재다. 그러나 존경하던 스승 덕희에 의해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게 된다. 어둠 속 불법 수술장에서 생명을 살리는 섀도우 닥터로 살아가고 있다.
박은빈은 "뇌와 수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망치고 있는 인물"이라며 "충동 조절이 안 되고 두려움이 없다. 통제 불가능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박은빈은 변신이라는 키워드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폭주 그 자체. 덕희를 향해 거침없이 소리 지르고, 심지어 얼굴에 침까지 뱉는다.
전작 '무인도의 디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박은빈은 "사실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세옥을 통해 어떤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설렜다"고 밝혔다.
이어 "해본 적 없는 장르와 캐릭터였다.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많이 미친 캐릭터를 보게 되실 것"이라며 "오감을 깨운 채로 연기했다. 몰랐던 저의 모습을 발견할 때, 이게 세옥의 얼굴이구나 느꼈다"고 떠올렸다.
설경구는 더 진하게 돌아왔다. '최덕희'를 연기한다. 덕희는 뛰어난 수술 실력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다. 뇌와 수술에 집착하는 제자 세옥을 보며 자신과 닮았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날개를 직접 꺾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불법 수술의 흔적을 쫓는 경찰들이 찾아오며 다시 뒤엉킨다. 세옥을 6년 만에 찾아가 자신의 생사를 건 수술을 제안한다.
설경구는 "뇌라는 섬에 갇혀 사는 섬 같은 인물이다. 혼자 잘난 맛에 산다. 뇌 이외에는 유일하게 애정했던 세옥을 자신의 옹졸함으로 인해 내치게 되는 냉정한 인간"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연기 포인트는 냉정함이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최대한 차갑고 무심해지려 했다"며 "박은빈과는 입체적인 사제지간을 그린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본 적 없는 사제지간을 그린다. 서로를 마구잡이로 헤집고 생채기 낸다. 설경구는 "존경하던 스승이 증오의 대상이 되고, 처음으로 애정하는 제자와 대립하게 된다. 입체적인 관계"라고 말했다.
김PD는 "세옥과 덕희의 관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그 사이에서 오묘한 톤을 유지하려고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설경구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박은빈을 꼽았다. "박은빈이 연기하는 세옥이 너무 궁금하고 기대되고 흥분됐다. 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가 박은빈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박은빈 역시 "선배님과 연기하는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 대화 신청을 많이 했다"며 "선배님이 안 계셨다면 이 작품을 완주할 수 있었을까 싶다. 정말 든든하게 받아주셔서 마음껏 까불 수 있었다"고 거들었다.
'하이퍼나이프'는 장르로 치면, 피카레스크 드라마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끈다. 박은빈은 "세옥에 대해 응원이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런 사람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봐주셨으면 좋겠다. 세상의 기로 끝에 선과 악을 마주치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감정의 변화를 체험해 주시면 좋겠다"고 바랐다.
전공책도 다시 폈다. 반사회성을 가진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했다. 정리해 놓은 책들을 읽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유형을 가질 수 있구나' 공부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임했다. "세옥을 만나 내내 치열하게 살았다. 끝까지 놓치지 않고 가슴 뛰게 살았다"며 "세옥을 어서 세상에 풀어주고 평가를 받고 싶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설경구는 "쉬운 작품이다. 고도의 천재 둘이 나오지만, 단순하게 싸운다. 인물들이 뱉는 말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하이퍼나이프'는 오는 19일 공개된다.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