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기자] 흔히 이야기한다. 여배우의 시간은 길지 않다고. 서른을 넘기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20대 청춘물 자리는 후배에게 내줘야 한다. 만약 로코를 하더라도, 연하남 혹은 이혼남과의 사랑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20대 청춘스타는 30대가 되면서 세대교체를 당한다.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며 진통을 겪어야만 한다. 아니면 억지로 과거 이미지를 소비하거나….
그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그녀는 달랐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을 때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자신의 때를 여유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영리했다. 다시 기회가 왔을 때, 그녀는 유일무이 혹은 대체불가의 캐릭터를 택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통해 건재함을 보여줬다.
이렇게 전지현은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제 배우의 색까지 찾아 나섰다.
◆ "스타, 다시 스타가 되다"
지난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은 이 영화로 연예계를 올킬했다. 그는 대체불가능한 스타였다. 스타 중의 스타였고, 스타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그 다음은 없었다. 이후 내놓은 작품들은 흥행에 참패했다. 무려 10년 간 그랬다. 대중들에게 전지현이라는 이미지는 흐릿해져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기회가 왔다. 2012년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 기세를 몰아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전지현은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로 영역을 넓혔다. '도둑들', '별그대'와는 정반대 작품이었다. 스타가 아닌 배우의 역량을 드러낼 때였다.
◆ "암살, 배우의 색을 더하다"
'암살'은 특별하다.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그 중 전지현의 비중이 상당하다.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스토리였다.
전지현은 "케이퍼 무비 계열의 영화에선 항상 남자가 중심이다"면서 "하지만 '암살'은 여성이 중심에 있었다. 욕심을 낼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지현은 독립군 최고의 저격수 안옥윤으로 분했다. '안경이 없으면 안되는' 흥미로운 저격수였다. 사람 안옥윤과 저격수 안옥윤의 모습을 가진 캐릭터다.
"여러 감정선이 있는 인물이에요. 표현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목소리 톤도 그렇고. 독립군이라고 해서 너무 무겁게만 다뤄서도 안될 것 같았죠."
◆ "최동훈, 믿음을 주는 감독"
최동훈 감독과 마주하자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최 감독이 전지현에게 선물한 것은 '믿음'. 놀랍게도, 감독의 믿음은 배우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전지현은 안정적이었다. 내내 액션을 책임졌고, 후반에는 로맨스까지 선보였다. 중간중간 상반된 캐릭터로 재미도 줬다. 끝까지 깊은 감성도 유지했다.
"최동훈 감독은 가장 완벽한 수장이에요. 그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감독 옆에 있으면 편안해졌어요. 덕분에 믿음을 갖고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최 감독과는 '도둑들'에 이은 2번째 호흡.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일례로 연기에 대한 생각이 일치했다. 심지어 "좀 애매하지 않나?"는 부분까지 같았을 정도.
"연기할 때 짜릿한 순간이 종종 왔습니다. 감독이 나를 100% 알고 있다는 느낌?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배우로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 "자신감, 전지현을 키운 힘"
"짜릿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전지현은 빛났다. '암살'은 전지현을 위한 영화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연기력은 풍부해졌고 존재감은 진해졌다.
비결이 있었을까. 전지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시간의 준 선물이라고 했다. "내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이전에 외면 당한 작품들이 많다"며 웃었다.
과거 실패를 인정하는 것도,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그는 정체기에도 전혀 초조해하지 않았단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지금을 준비했다.
"전 더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지금 연기를 합니다. 조급할 이유가 없죠. 더 좋은 연기를 위해 지금의 시간이 있는거니까요. 오히려 대중이 조급하게 단정지었죠."
◆ "연기, 세월을 반기는 이유"
여유는 전지현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더 큰 성공을 맛봤고, 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저 예쁜 스타가 아닌, 멋있는 배우로 다가세게 됐다. 답은 이미 찾은 모습이다.
"제가 찾은 정답은 나이에 맞는 연기입니다. 어떤 연기가 좋은건지 스스로에게 물었죠. 그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가 답이더라고요. 앞으로 제가 갈 길입니다."
그래서일까. 전지현은 시간의 흐름을 반겼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보여줄 게 더 많을 거라며 즐거워했다. 표현의 능력치가 올라간다는 의미였다.
"여배우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세월이 지날 수록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넓어지기 마련이죠. 배우로서 그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요?"
<사진=서이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