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구 기자] '외로운 남녀'라면 봄 날 연극 한편 어떨까. 연극 '비기닝'(표상아 연출)이 제격이다. 2인 극으로 90분에 걸쳐 펼쳐지는 '남녀의 밀당'은 현실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8일 김윤지, 윤현민 첫 공연을 봤다.
왜 제목이 '비기닝' 일까? 원작 자는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엘드리지(David Eldridge). 이 작품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3부작 시리즈 중 첫 작품. 2017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됐다고 한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 영국 매체는 "현대 런던의 삶을 완벽히 포착한, 데이트 앱 시대 싱글들의 씁쓸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라며 극찬했다고. 런던에 살던 한국에 살던 연애는 연애다.
런던 한 아파트에서 마주한 남녀 대니(윤현민)와 로라(김윤지). 한국 술집 모임에서 모두 떠나고 남은 한 쌍의 남녀.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면 더 실감날 수도 있다. '잘 수 있을까? 없을까?' '자러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전제 조건은 까다롭다.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 로라는 자가 소유 아파트에서 파티를 열었다. 대니는 친구를 따라 왔을 뿐인데, 둘은 눈이 맞았다. 로라가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는 딸이 있는 유부남이다.
대니는 다소 소극적이고, 로라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이다.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만 결혼이 목적은 아니다. 반면, 대니는 이미 자신의 딸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이혼 남 처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로라의 계획은 콘돔을 한 개만 준비할 정도로 철저하다. 아이를 갖게 되더라도 한번은 검증을 거치겠다는 것. 결국 대니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넷플릭스 영화 '리프트:비행기를 털어라'의 김윤지는 연극 '비기닝'으로 온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간혹 입에서 터지는 욕설은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자신이 원하는 남자에게 당당히 다가서는 로라와 딱 맞는다.
2017년 런던 남녀의 파티는 2025년 서울 남녀의 상황과 얼마나 맥이 통할까. 욕망 해결이 우선인 데이트 앱은 여전히 허무할 것이다. 연애 못하는 남녀, 비혼, 이혼 남녀 모두 외롭다. 연애나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남녀도 적지 않다. 어떻게 외로움을 채우고 사랑을 할 것인가.
'비기닝'이란 어떤 세상이든 남녀가 사랑을 '시작' 해야 하는 운명임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데이비드 엘드리지의 '비기닝' 이후 작품은 남녀의 삶을 시간 순으로 다룬다.
두 번째 작품은 '미들'. 결혼 생활 중반에 접어든 부부의 갈등과 사랑을 탐구했다. 마지막은 '엔드'. 인생 말 년에 접어든 커플이 과거와 현재를 회고하며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라고 한다.
'비기닝'에서 '미들'을 거쳐 '엔드'로 이어지는 남녀 세계는 이제 평범하지 않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대니와 로라는 '비기닝'의 기회를 피하진 않는다. 외로운 남녀에게 연애를 자극한다면, 연극 한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연극 '비기닝'은 윤현민, 김윤지 외에 이종혁, 유선이 짝을 이뤄 무대에 선다. 오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