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메디컬 드라마 아닌, 메디컬 활극입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거침없이 누볐다. 중동 지역, 내전의 한가운데에서 환자들 곁을 지켰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사명감은 여전했다.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더 많은 이들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속 백강혁(주지훈 분)은 현실에선 보기 힘든 캐릭터다. 환자 상태만 딱 보면, (치료법이) 척 하고 나오는 실력자다.
뛰어난 의술뿐 아니다. 오토바이 운전을 비롯해 헬기 조종, 구급차 드리프트 등 다재다능하다. 심지어 이러한 능력을 환자를 위해 온전히 사용한다.
'메디컬 활극'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지훈은 "(백강혁 활약을 보며) 현실에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스패치'가 주지훈을 만났다. 자신만의 백강혁을 완성하기까지, 치열했던 고민의 과정들을 들었다.
◆ 메디컬 판타지의 탄생
'중증외상센터'는 천재 외과 의사가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지훈은 "부조리한 상황을 속 시원하고 통쾌하게 헤쳐나가는 스토리"라고 소개했다.
첫 장면부터 기존 메디컬 드라마와는 확연히 달랐다. 오토바이를 탄 주인공이 전장을 활보했다. 헬기에서 레펠을 타고 내리거나 환자 이송 중 뇌압강하술을 시도했다.
한마디로,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가깝다. 그래서, 꼭 하고 싶었다. "(대본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주인공이) 어려운 현실을 유쾌하게 헤쳐나가는 걸 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기획 단계부터 적극 참여했다. 작품을 향한 애정으로 감독까지 직접 구했다. 영화 '좋은 친구들' 이도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주지훈은 "장르 특성상 사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많았다. 근데 원작이 너무 밝더라. 시청자들께 잘 전달하기 위해선 꽤 많은 부분을 리얼하게 바꿔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도윤 감독이 적역이었어요. 밝은 원작과 어두운 감독을 만나게 했더니 너무 눈부시지 않은 따스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 디테일 가미한 각색
각 장면 디테일에도 신경 썼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실사화 과정에 보다 세밀한 주의가 필요했다.
주지훈은 "이야기가 재미있을수록 장르적 쾌감은 살리고 (디테일은) 땅에 붙어야 한다"면서 "감독, 작가와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콘텐츠 특성상 (만화와 드라마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아무래도 만화여서 가능한 부분들이 있죠. (원작과) 달라야 한다고 강하게 의견을 냈던 것 같아요."
마취과 의사와의 갈등을 부각하는 신이 대표적이다. 원작에선 백강혁이 환자를 곁에 두고 황선우(김충길 분)와 신경전을 벌인다.
그는 "원작 내용 중에 마취과 의사가 오지 않아 복도에서 난리를 치는 장면이 있다. 만화로 보면 크게 이상하지 않다"고 말을 이었다.
"만화에선 마치 백강혁 혼자 있는 것처럼 그려졌는데 실사화로 하면 그게 안 되잖아요. 환자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환자와 그 가족들 앞에서 육두문자라니... 캐릭터성이 깨질 것 같아 바꾸자고 제안했어요."
◆ 주지훈 입은 백강혁
주지훈표 백강혁을 완성하는 데에는 연기 경험이 주효했다. 주지훈은 드라마 '궁', '킹덤',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신과 함께' 등 만화 원작 작품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원작이 너무 잘 됐거든요. 이걸 시리즈로 만들다 보니 고려할 게 많았어요. 원작 팬들도, 안 본 분들도 이해시켜야 했죠. 그 딜레마를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이 2번째 메디컬 장르 도전이다. 그는 드라마 '메디컬 탑팀'(2013)에 이어 12년 만에 의사 가운을 입었다.
수술실 장면은 별다른 무리 없이 찍었다. 그는 "의사 역할을 이미 해봤다. 천재 캐릭터라 뭔가를 참고하거나 (수술) 참관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손해라고 봤다"고 말했다.
다만 대사 처리에서 애를 먹었다. "확실히 그런 대사(의학 용어)가 있으면 발음하기 힘들다. 실제 상황에선 발음을 흘려도 알아듣는데 극이지 않나"라고 전했다.
"중증외상센터가 일단 긴박하잖아요. 근데 그 안에서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니까 진짜 힘들었어요.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중증외상센터 과장, 간호사들이 대기하며 자문해 줬죠."
◆ 관계성 맛집의 과정
무엇보다 출연진들 간의 시너지가 몰입을 더했다. 주지훈을 필두로 추영우, 하영, 정재광, 윤경호, 김의성 등이 '중증외상센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계속해서 머리를 맞댄 덕분이다. 매일 7~8시간씩 회의를 진행했다. 이렇게 채택된 아이디어를 촬영 현장에 대입했다.
주지훈은 "정답이 없었다. 모두 고민해서 회의한 다음 현장에서 해보고 또 해봤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수평적인 분위기 역시 한몫했다. "이도윤 감독이 열린 스타일이다. 자유롭게 소통할 때 시너지가 좋더라"라며 "후배들에게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어디서든 신입은 내부 발언권 얻기 쉽지 않잖아요. 질문하고 싶은 게 많을 텐데 눈치가 보일까 봐 '대학 스터디처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이러한 제안이 먹혀들었다. 실제로 신인 연기자들은 나날이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주지훈은 "화면에 그들이 널뛰는 게 보였다. 시청자들도 갈수록 성장하는 게 보일 것"이라고 만족해했다.
◆ 다작 배우의 자부심
주지훈은 연예계 대표 다작 배우로 통한다. 지난해에만 총 4편을 공개했다. 드라마 '지배종',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조명가게',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를 선보였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드리웠다. 황태자부터 인권 변호사, 경호원, 저승사자, 천재 외과의사까지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했다.
모든 배역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했다. "내 나름의 자부심이다. 누구와 하든, 어떤 환경이든 허투루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건 제 직업관인데요. '너 이게 최선이니' 하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열심히 찍은 걸 관객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줄 때 엄청난 쾌감을 느낍니다."
차기작에 관한 질문에는 "나는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간"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구체적인 목표는 없고요. 그저 하루 하루 충실하게 살고 있어요. 내 시간을 잘 보내고 그 안에서 감정 쌓는다면 다음 작품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