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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따라 갈까부다"…'정년이', 국극의 궁극

[Dispatch=정태윤기자] 여느 성장 드라마다. 적을 만나 위기에 빠진다. 사고(혹은 민폐)를 수습해 주는 조력자도 있다. 걷고,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뛰기를 반복한다.

여느 성장 드라마와 (조금) 다르다. 정년(김태리 분)과 영서(신예은 분)의 관계성은 특별하다. 소리 천재와 소리 성골의 맞대결. 두 사람은 '견제'가 아닌 '경쟁'을 통해 자란다. 등을 지고 있지만, 결국 기대고 있었던 것.

"행운이야 넌. 난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거든." (문옥경)

이들이 맹렬히 좇는 '국극' 역시 드라마의 백미다. '정년이'(극본 최효비, 연출 정지인)는 극중극 구성을 택했다. 그 구조는 스토리에 강력한 환기를 불어넣었다. 국극 무대의 뜨거움까지 안방에 전달할 수 있었다.

또 무엇이 있을까. '정년이'가 시청률 15%를 뚫을 수 밖에 없는 3가지 이유를 살폈다.

◆ 국극,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

'정년이'는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극을 소재로 가져왔다. 여성국극은 창극의 갈래로서 연극의 한 장르다. 1950년대 성행하다, 영화 산업의 발달로 사라져 버렸다.

소재는 신선하지만, 요즘 시청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그래서 배우들은 '진짜'를 보여주기로 했다. 무대 위의 열정을 화면을 통해 전달하자.

김태리는 약 3년간 소리를 공부했다.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목포에 내려가 귀를 틔우고, 매주 수업도 받았다. 안무는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워나갔다.

신예은, 정은채(문옥경 역), 김윤혜(서혜랑 역), 우다비(홍주란 역), 승희(박초록 역), 이세영(백도앵 역) 등도 마찬가지. 캐스팅 후 1년간 소리와 춤에 몰두했다.

제작진도 혼신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춘향전'(3회), '자명고'(6회), '바보와 공주'(10회) 모두 무려 20분가량 국극 무대가 이어진다. 드라마 한 회의 1/3 분량인 셈.

드라마팀과 국극 무대 연출팀이 긴밀히 소통하며 만들어 나갔다. 연습 현장부터 함께하며 동선을 정하고 연기 톤을 잡았다. 공연적 표현과 드라마적 표현 방법의 중간을 찾아나갔다.

배우들은 정극과 국극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얼굴을 갈아 끼웠다.

김태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시름을 잊게 만드는 광대 같은 방자,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품은 군졸1 등. 작은 역할임에도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장악했다.

신예은은 이몽룡과 방자, 1인 2역을 소화했다. 완벽에 가까운 이몽룡과 어리숙한 방자를 0.1초 만에 오갔다. 빙의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음험한 고미걸과 바보 온달에도 완벽히 몰입했다.

◆ 라이벌, 이렇게 건강할 수 없었다

'정년이'는 정확히 성장 드라마의 플롯을 그린다. 뚜렷한 목표를 설정한 주인공. 갈등과 장애물을 넘고 내면의 갈등을 겪다가, 결국엔 그 목표에 도달한다.

여기서 '정년이'가 흥미로운 점은, 천재들의 성장이라는 것. 정년은 '소리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리 천재다. 타고난 것에 기대지 않았다. 각혈할 때까지 연습한다. 그만큼 소리를 사랑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천재 허영서. 소리, 춤, 연기 모두 되는 육각형 인재이다. 타고난 실력과 성실한 노력이 더해진 오랜 경력까지 갖췄다.

"소리는 내 바닥이고 내 하늘이여. 내 전부라고!" (윤정년)

"최고가 될 자신이 없었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예요." (허영서)

이건 게으른 천재와 노력하는 범재의 대결이 아니다. 노력하는 두 천재의 싸움이다. 서로를 부러워하는 둘이 만나 겨룬다. 그래서 더 팽팽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받으며 자라난다.

그 방법은 성숙하다. 오직 실력으로 맞붙는다. 상대의 실력을 인정할 줄 알고, 서로를 비추며 성장한다. 진정한 라이벌의 의미를 일깨운다.

영서는 오직 자신을 위해 소리를 하는 정년을 보며 진정한 목표를 깨닫는다. 엄마의 인정이 아닌 (정년이처럼) 나의 길을 위해 국극을 하겠다고.

정년은 오직 자신의 꿈을 향해 내달리기만 했던 여정에 든든한 친구를 얻었다. 영서의 굳은 믿음에, 소리가 안 나와도 국극을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전 그 애가 필요해요. 절 자극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애만이 제 마음을 알아줘요." (허영서)

10회. 영서의 입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한다. 서로의 유일한 자극제이자, 나의 마음을 정확히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 함께 기대어 성장하는 두 천재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 김태리, 이렇게 '정년'일 수 없었다

'정년이'의 완성은 배우들이었다. 김태리는 '미스터 션샤인'(2018년),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년), '악귀'(2023년) 등 하는 작품마다 성공시켰다. 시대극, 청춘 로맨스, 오컬트 등 장르도 다양하다.

이번 선택 역시 실패는 없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목포 소녀로 변신했다. 김태리는 반짝이는 눈으로 꿈을 향해 돌진하는 정년이를 완벽하게 삼켰다.

어쩌면 정년이 될 운명이었다. 원작 웹툰의 실제 뮤즈로도 알려져 있다. 김태리는 드라마화 결정 동시에 캐스팅을 확정했다. 그렇다고 거저 된 것이 아니다. 대본이 나오기 전부터 준비했다.

지난 2021년부터 소리를 배웠다. 그 과정에서 판소리의 매력에 매료됐다. 몇 번을 다시 불러도 힘들지 않았다. 정년이와 소리를 사랑하는 마음도 동화된 것.

김태리는 1회에서 북장단 하나 없이 '남원산성'을 소화했다. 그는 "소리가 정말 재미있어서 여러번 부르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너무 즐거웠다"고 떠올렸다.

성장극인 만큼, 계속해서 변화해야 했다. 해맑게 소리를 사랑하던 소녀에서,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습, 난관을 만나 몸부림치는 얼굴, 그리고 자포자기한 듯 초연한 표정까지. 그의 여정을 따라 온전히 느끼고 몰입하게 했다.

무대에선 혼신을 쏟았다. 정년은 '군졸1' 역할을 해도, 주인공들을 잡아먹을 정도의 연기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는 온전히 김태리의 몫이었다. 목 놓아 한을 노래하며 울부짖었다. 소름은 관객의 몫.

떡목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소리를 내지르며 쇳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일례로 사투리. 모든 현장에 사투리 자문 선생님이 함께했다. 연기가 좋았어도, 어색하면 처음부터 다시 찍었다.

정년이 득음을 하기 위해 동굴에서 사투를 벌인 것처럼, 김태리도 정년이가 되기 위해 지독한 싸움을 했다. 그 피, 땀, 성장이 '정년이'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 신예은, 이렇게 '탈연진' 할 줄 몰랐다

신예은은 전작 '더 글로리'(2022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학폭 주동자로 사악한 빌런을 그렸다. 이름 대신 극 중 이름 '연진'이로 불릴 정도.

이미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지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오직 연기로 승부해야 했다. 심지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얼굴이 (연진이와) 비슷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연진이는 없었다. 엄마의 치맛바람과 주위의 기대, 언니보다 부족하다는 자신의 한계. 얼마든지 비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영서는 까칠할 뿐 악역은 아니었다. 정년이를 시기하고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 상대의 불운으로 이기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자기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 나선다.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맞붙어 이기겠다는 다부짐. 그 단단한 뿌리부터 연진이와 달랐다. 무대 위에선 도도한 얼굴을 지우고 삽시간 안에 방자로 변신하는 모습은 단연 압권.

"정년아 넌 지금도 앞으로도 혼자 남을 일 없을 거야. 내가 쭉 네 옆에 있을 거니까. 네가 다시 무대에 오를 때까지 언제까지고 내가 꼭 기다릴게." (허영서)

영서 역시 정년이와 함께 성장했다. 차가운 완벽주의자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알게 되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정년에게 위로를 건넬 때. 영서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했다.

(신예은은 분명, 영서의 얼굴도 금세 탈피할 것이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년이'는 매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 중이다. 10회는 최고 15.4%(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솟아올랐다. 이제 마지막 2회를 앞두고 있다. '매란국극단'으로 돌아간 정년이는 별천지를 빛내는 스타가 될까.

<사진출처=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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