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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 사라지니, 귀 기울이는"…홍경, '청설'의 여백

[Dispatch=정태윤기자] "영화의 빈 여백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래야 곱씹고, 그 찰나의 순간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주로 임펙트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사정없이 감정을 쏟아내고, 폭발하고, 강력한 한방을 표현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아이러니하게) 여백이라는 말이 나왔다.

영화 '청설'(감독 조선호). 그가 사랑해 온 여백을 담은 작품이다. 들을 청(聽)과 말씀 설(說). 소리를 죽이고 오직 눈빛과 표정, 몸짓으로 대화했다.

음성이 꽉 차지 않아도, 영화는 가득 찼다. 눈을 못 떼게 하니, 저절로 집중하게 됐고, 머리는 감정을 곱씹게 했다. 20대의 풋풋한 사랑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영화로 확인한 그는, 온전히 여백을 즐길 줄 아는 배우였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연기했습니다. 상대가 뭘 주는지 보고 느끼고 반응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 못한 연기도 튀어나왔죠. 관객분들도 분명 그런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 "평범한 20대를 연기했다"

홍경은 꽃미남 배우과는 아니다. 캐릭터성 있는 연기를 주로 소화해 왔다. 가장 최근엔 '댓글부대'에서 온라인 여론 조작에 빠져드는 키보드 워리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엔 청정 무공해 로맨스 '청설'을 만났다. 영화는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용준(홍경 분)과 진심을 알아가는 여름(노윤서 분), 그리고 둘을 응원하는 동생 가을(김민주 분)의 이야기다.

제 나이에 딱 맞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대변한다. 과연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이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강한 얼굴을 지우고, 푸릇푸릇함을 입었다.

20대의 첫사랑을 순수하게 표현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된 느낌이 아니라, 수수함이 담겨 있었으면 했다"며 "빈틈이 있을 때 오는 정감을 살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영화 내내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한다. 멋있는 차가 아닌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여느 20대처럼 진로를 고민하고, 첫사랑에 애태우는 평범함을 그렸다.

"연남동, 망원동, 합정동 등 대학생들이 많은 동네에서 촬영했습니다. 티셔츠 하나 입고 걷는데, 용준이와 비슷한 학생들이 많더라고요. 용준이처럼 순수한 아이가 그 동네 어딘가에 있다 믿고 연기했죠."
소리 없이, 가득 채웠다

'청설'의 가장 특별한 점은, 손으로 대화한다는 점이다. 서로를 청각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수어를 통해 가까워지게 된다. 배우들이 함께 수어를 배웠다.

홍경은 "3개월이라는 시간을 주셨는데, 조급해 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을 들여야 얻어지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 몸이 느끼게 놔두고 그 과정을 천천히 맛보려 했다"고 떠올렸다.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경험도 했다. 그는 "상대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얻었다. 상대가 뭘 주는지 보고 느꼈다. 상대에게 온 신경을 쏟으니, 생각지 못한 연기가 튀어나왔다"고 설명했다.

"제 몸이 더 유연하게 움직였던 것 같아요. 수어로 '이력서를 넣어도 다 떨어진다'고 말하면서, 제 몸도 자연스럽게 떨어지거든요. 계산하지 않아도 제 몸 자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소리가 사라지니, 오히려 더 귀 기울이게 됐다. 덕분에 현장은 몰입의 연속이었다. 정적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온전히 집중되는 경험을 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용준과 여름의 대화는 90% 이상 손으로 한다. 몸짓과 표정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오롯이 두 사람의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요즘은 대부분 오디오를 빈틈없이 채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늘 영화의 빈 여백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래야 곱씹고 찰나의 순간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관객분들도 그런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달라서 어려웠다"

로맨스가 다른 장르물보단 (연기하기) 쉬울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작품이든 힘들지만, 로맨스물은 특히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사랑이라는 그 미묘하고 세심한 감정을 꺼내는 일이니까요. 솔직하게 연기하지 않으면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죠."

게다가, 용준과 홍경의 사랑법은 달랐다. 일례로, 용준은 여름을 향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또 세심하게 다가간다. 반면 홍경은 10보 물러나 버리는 성격.

홍경은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이러면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면서 "그런데 용준은 사랑에 가닿기 위해 노력한다. 그 마음이 무엇일까 궁금해했다"고 전했다.

"용준이가 여름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투박하지 않았어요. 고민하고 경로를 찾죠. 다가갈 때 시간을 들이고, 상대를 먼저 걱정하고요. 그런 선택들이 사려 깊어서 좋았습니다."

용준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로맨스에 힘이 실렸다. 여름에게 반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것. 엔딩의 첫키스신이 그랬다.

그는 "용준에겐 첫키스라고 생각하니 더 떨리더라"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그 느낌들을 기억한다. 처음이라는 걸 최대한 느끼려 했다"고 수줍게 웃었다.

홍경의 20대

배우 홍경의 20대는 다채로웠다. 작은 역할부터 타이틀 롤까지. 그리고 강렬한 캐릭터에서, 청춘의 얼굴까지.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하기엔 이르다.

그는 "감사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것도 많다. 의미 있는 걸 남겼는지 의심하게 된다"며 "20대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래에 대해 불안을 말하는 그에게서, 여느 20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홍경은 "늘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다. 일이 끊길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며 잠도 못 자고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만족하지 않는데서 오는 결핍 때문이기도 했다. 20대를 마무리하기 전, 내가 의미 있는 걸 남겼나. 잘했나. 끝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열망이 컸으니까.

그가 그렇게 갈망하고 맹렬히 좇은 연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정인 것 같아요. '약한영웅'에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열등감이었고, '청설'에선 첫사랑의 떨림이었죠. 찰나의 것들이 쌓이고 쌓여 탁, 터지는 순간. 그걸 좇는 것 같아요."

그는, 그 찰나의 것들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달려갈 예정이다.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커요. 95% 이상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흥분돼요. 용준이도 사랑을 대하는 방식에서 달랐기에 더 끌렸고요. 계속해서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사진제공=mmm,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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