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혜진기자] 고등학생 변백현의 MP3. 그 안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던 목록은, 리듬 앤드 블루스(R&B)다.
그가 가장 즐겨들었던 음악이다. 형식, 박자 등에 얽매이지 않아 좋았다. 자유롭게 부르며 자신만의 그루브를 만들어가는 점이 끌렸다.
제일 잘하고 싶었던 음악이기도 했다. 잘 해내고 싶었던 만큼 어려웠다. 애증 같은 알앤비는, 그의 뿌리가 되어줬다.
백현이 홀로서기를 한 후 첫 앨범을 발매했다. 전작 '밤비' 이후 미니 4집 '헬로, 월드'(Hello, World)로 3년 6개월 만에 자신의 세상에 인사했다.
그가 가장 동경하는 것, 이번에도 알앤비를 파고들었다. 완전한 백현색으로 물들인 '헬로, 월드'였다.
◆ Hello, World
'헬로, 월드'. 백현이 인사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6곡 전곡 알앤비를 수록했다. 테마는 꿈과 열망. 액션, 누아르, 로맨스 등 영화 장르에 빗대어 표현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로 포문을 열었다. 첫 트랙은 '굿모닝'(Good Morning). 백현의 첫 시작과 새 포부를 담았다.
이번에도 싱어송라이터 콜드가 참여했다. 둘은 지난 2019년 백현의 첫 솔로 1집 수록곡 '다이아몬드'부터 2집 '러브 어게인', 3집 '러브 씬' 등 계속 합을 맞춰왔다.
백현의 뚝심이 돋보인다. 그도 그럴 게, 전곡을 알앤비로 고집하는 K팝 가수는 흔치 않다. 앨범 참여진도 알앤비 가수들로 포진되어 있다.
김도헌 평론가는 "한국에서 발라드는 인기 있지만, 알앤비는 비인기"라며 "태양 이후로 K팝과 알앤비를 융합한 기대주로 백현이 등장했다.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이어 "알앤비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는 많아도, 알앤비를 이정표로 전면에 세워서 나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앨범"이라고 분석했다.
◆ "나를 위한 노래"
타이틀곡은 '파인애플 슬라이스'(Pineapple Slice). 알앤비 팝이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파인애플 한 조각에 빗대어 표현했다.
도입부에 신스로 새로운 막이 열리는 느낌을 표현했다. 백현은 "도입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무대 위 저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치 나를 위한 노래 같았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건네 / Oh What's your name'. 시작부터 백현의 전매특허, 고혹적인 보컬과 관능의 퍼포먼스를 강조했다.
'딱 한 입 Pineapple slice of me'라고 발랄한 노랫말을 뱉으며, 매혹적인 안무를 펼쳤다. 농익은 가성은 섹시함을 터트렸다. 후반부에서는 고음으로 짜릿함을 더했다.
알앤비 리듬을 타고 유려하게 흐른다. (물론, 리스너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전작 '밤비' 보다 편안하게, 혹은 심심하게 느낄 수 있다.
프로듀싱은 2% 아쉽다. (사용된) 악기와 사운드가 201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 백현의 변주하는 보컬에 맞춰 프로듀싱도 더 과감해졌다면 어땠을까.
김 평론가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건 아니다"면서도 "계속해 온 음악을 성실하게 선보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봤다.
◆ 비주얼·보컬 맛집
전작 '밤비'가 귀로 듣기에 강렬했다면, '파인애플 슬라이스'는 비주얼라이징에 더 무게를 뒀다. 백현의 기존 무드를 이어가면서 뮤직비디오, 독무 등을 강조했다.
백현이 올라운더 플레이어로서 기능한다. 무대 위에서 보컬, 퍼포먼스, 비주얼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백현은 그동안 슬로우 잼(Slow Jam) 위주의 알앤비를 선보였다. 끈적하고 로맨틱한 곡으로 백현만의 무드를 만들었다.
이번엔 알앤비 안에서도 레인지를 더 넓혔다. 수록곡마다 변주하는 보컬이 특징. 백현은 호흡, 발성, 톤, 애드리브 등으로 보컬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랑 데뷔'(Rendez-Vous)는 보사노바 리듬에 알앤비 보컬을 입혔다. '우'(Woo)는 묵직한 드럼의 타격감과는 상반되는, 간드러진 보컬을 들려줬다.
'콜드 하트'(Cold Heart)는 힙합 알앤비다. 싱잉랩에도 도전했다. '트루스 비 톨드'(Truth Be Told)에서는 애절한 백현을 만날 수 있다.
◆ 백현의 변주
알앤비는 큰 장르다. 나무로 비유하자면, 뿌리에 해당한다. 소울(Soul), 펑크(Funk), 힙합 등 수많은 가지로 뻗어나간다. 그 가지에서 또 다른 열매(장르)들을 맺는다.
백현은 알앤비 안에서도 조금씩 변주하면서 자신의 색을 굳히고 있다. 첫걸음을 디뎠다. 지금처럼 그만의 '세상'(world)에 가능성과 노력을 쌓아나가면 된다.
백현이 이번 앨범으로 보여주고 싶은 건 단 하나. 그는 "아티스트로서 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백현이 새 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제 출발점"이라며 "신보는 알앤비 가수와 K팝 스타의 중간점을 잘 잡아나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백현의 음악에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했다. 앞으로 어떻게 (이전과의) 차별점을 두느냐가 주어진 과제"라고 전했다.
'헬로, 월드'는 발매날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터차트 기준, 당일에만 89만 3,214장을 팔았다. 5일 만에 100만 장을 넘겼다. 3연속 100만장을 돌파했다.
<사진출처=INB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