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편하면 오히려 불안해요."
좀비를 사냥하고(킹덤), 수감된 살인범이 됐다가(암수살인), 저승사자로 각종 지옥을 넘나들었다(신과 함께). 레바논 외교관 납치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비공식작전).
이번엔 재난 상황이다. 대교가 무너지고 개에게 쫓겼다. 달리고 넘어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침샘에 염증이 생기고, 경추에 이상이 왔다. 이제는 몸이 고생해야 마음이 편할 지경.
"지금 찍는 드라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갈등도 지극히 일상적이죠. 촬영하면서 이렇게 편해도 되나. 죄책감이 들 정도입니다. 하하." (주지훈)
'디스패치'가 최근 배우 주지훈을 만났다. 이번 작품도 쉽지 않았다. 그가 영화 '탈출 : 사일런스 프로젝트'(감독 김태곤)에 쏟은 열정을 들었다.
◆ 이미지 탈출
영화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재난물이다.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이 풀려난다.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극한의 사투를 벌인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았다. 약 1년 만에 국내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그간 다듬고 편집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쳤다.
"칸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영화를 통해 통쾌함을 느끼신 것 같아요. 국내 관객분들에게도 통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주지훈은 렉카 기사 '조박'을 맡았다. 인생의 잭팟을 노리며 도로 위를 배회한다. 사고를 기회로 삼는다. 반려견 '조디'와 함께 공항대교 연쇄 추돌 사고 현장에 간다.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출했다. 날티(?)나는 브릿지의 긴머리. 그의 아이디어다. 1990년대 후반, 동네 주유소에서 일하던 무서운 형들의 이미지를 접목했다.
"도전적인 스타일이었지만, 과감하게 택했습니다. 감독님께 조박이 타는 렉카의 연식을 물어봤어요. 그 정도 연식이면 비싼 옷을 안 입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작은 디테일들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 전형성 탈출
캐릭터도 재난 영화의 전형성을 벗어났다.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어둡고 숨 막히는 극한의 상황을 환기했다. 가볍고 능청스럽게, 때론 (밉지 않은) 욕망을 드러냈다.
주지훈은 "조박은 이기적인 면이 있지만, 나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는다"며 "심지어 서서히 변모하는 과정이 그를 귀여워 보이게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 웃음을 담당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하면 혼자만 떠 보일 수 있다. 주지훈은 "처음엔 지금보다 더 튀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덱스터 스튜디오와 '신과 함께'로 작업했었다. 기술적으로 보정할 시간과 능력을 갖춘 팀이라는 걸 알았다. 때문에 현장에선 의심하지 않고 대본 안에서 충실하게 날뛰었다"고 말했다.
"편집하고 나니, 저만 오선지 안에 안 들어가더군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후시 녹음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더빙하듯 다시 연기했죠. 캐릭터부터 다시 잡았어요. 50% 정도 깎아내려 톤을 맞췄습니다."
그럼에도 튄다는 반응도 있다. 주지훈은 "그 의견도 100% 존중한다. 호평만 하는 건 건강하지 않은 것 같다. 창피하고 귀가 빨개질 수 있겠지만, 다양한 반응을 본다. 알아야 고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탈출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몸을 내던졌다. 침샘에 염증이 나고 경추에 무리가 오기도 했다. '탈출'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심지어 강아지 '조디'가 부러웠을 정도.
주지훈은 "저는 해야 하면, 해내는 성격이다. 누가 조금만 회유하면 그냥 한다.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한다"며 "말을 못 알아듣는 강아지가 부러울 정도였다"고 하소연했다.
일례로, 실험용 군견 '에코'들을 피해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가는 신. 주지훈은 "제 키가 187cm이다. 그 작은 차에 몸을 욱여넣어야 했다. 그 부분은 왜 CG로 해주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힘들기보단 아팠다"고 토로했다.
'에코'들을 쫓기 위해 위스키로 화염을 일으키는 '불쇼' 장면도 마찬가지. 위스키를 입에 머금고 뿜어내 불을 만들어내야 했다. 위스키가 침샘에 고여 촬영 내내 염증을 앓았다.
"원래는 전문 차력사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위만 챙기던 애가 동료애를 처음으로 드러내는 신입니다. 게다가 극적인 상황을 타파하는 중요한 장면이죠. 너무 완벽하게 해도 이상할 것 같았어요. 제가 해야겠더라고요."
◆ "최고보다, 최선을 다한다"
'왜 CG로 해주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강아지가 부러웠다' 등 앓는 소리를 했지만, 그의 진심은 달랐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두 발 벗고 나서는 배우였다.
한마디로, 빼지를 않는다. 해야 하는 건 최선을 다해서 한다. 그가 다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지어 쉬운 연기도 아니다. 시대물, SF, 액션 등 장물 위주로 해왔다.
주지훈은 "하드한 장르만 선호하는 건 아니다. 감독님과 작가님들이 저를 그렇게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지금 로맨스물을 찍고 있는데, 너무 편해서 죄책감이 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열심과 흥행이 항상 비례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가 연기 다음으로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그는 "세상이 바뀌고 있지 않나. 우리가 변화를 맞이하는 첫 세대인 것 같다. 업계 사람들과 다 같이 고민하고 있다"며 "사이즈 큰 영화를 개봉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 지금도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주지훈의 연기 철학이다.
"최선을 다해야 부족할 때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니까 연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요. 여러 역할로 쓰이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인생에 깊게 스미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사진제공=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