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로튼 토마토 신선도 100%다. 파격적인 발상, 스타일리시한 연출, 입체적인 연기. 어느 한 곳 무른 데 없이 신선했다.
특히 연출 방식이 새롭다. 기존 스릴러에선 보지 못한 문법. 빠르고, 과감하고 재치있었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환상을 교차하는 방식은 키치했다.
이창희 감독은 이탕(최우식 분)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을 고속촬영으로 담았다. 시청자들이 그 순간을 또렷이 목도하게 하며 기묘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건 살인인가, 판타지인가. 모호한 경계에 데려다 놓고 몰입하게 했다. 제목을 '살인자이응난감'으로 읽어야 할지, '살인 장난감'으로 봐야 할지 고민되는 것처럼.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이상하고 일반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이 작품은 문법을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접근했습니다." (이창희 감독)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 원작ㅇ난감
'살인자ㅇ난감'은 8부작 스릴러다.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대학생 이탕과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의 이야기를 그린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 감독은 "웹툰을 처음 접했을 때, 괜히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건지는 거 아닌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원작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너무 강렬했다. 충격적인 소재에 화풍은 독특했다. 배경을 삭제하고, 캐릭터들을 이등신으로 그려 살인의 잔인함을 중화했다.
이창희 감독은 '원작과 같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다. 드라마만의 매력을 살리고자 했다. 실제로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이 원작 캐릭터와 완벽히 일치하진 않는다.
최우식은 실제 캐릭터보다 더 무기력한 이미지. 손석구는 더 남성적이고 강렬하게 채색했다. 이희준은 실제 60대 노인도 아니다. 캐스팅 당시 우려도 있었다.
이 감독은 "전작 '타인은 지옥이다'를 찍으며 실제 외모가 캐릭터와 유사하지 않더라도 배우가 연기력으로 그것을 커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연출 의도를 말했다.
"박형사(현봉식 분)은 원작과 풍채부터가 달라요. 그런데도 잘하니, 그냥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이번엔 싱크로율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배우들이 캐릭터 연구로 모든 걸 채웠죠."
◆ 연출ㅇ난감
첫 장면부터 웹툰과 다르게 갔다. 원작은 이탕이 지검사를 납치한 뒤 고문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드라마에선 이탕의 일상적인 대학 생활로 출발한다.
이 감독은 "처음에는 웹툰대로 찍었다. 하지만 이탕의 흑화를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보다, 일상적인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새로울 것 같더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스릴러는 처음에 톤 앤 매너를 잡고 시작합니다. '이건 이런 작품이야'라고요.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아무런 정보 없이 본 사람은 '이게 MZ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인가?' 하셨을 겁니다. 그러다 살인이 시작되면서 '띠용'하는 거죠."
말 그대로, 틀을 깨고 싶었다. 신예 김다민 작가가 초고를 썼지만, 직접 각색을 한 것도 그 이유다. 자신의 언어로 다듬어 유니크함을 더했다.
계획대로 이 감독의 색깔이 뚜렷하게 묻어나왔다. 빠르고, 팝하고, 트렌디했다. 점프컷으로 캐릭터의 시점을 이동시키며 몰입시키는 방식,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캐릭터의 서사를 쌓는 것 역시 새로웠다.
◆ 문법ㅇ난감
일례로 이탕이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 방에 못을 박기 위해 망치를 들어 올리는 팔과, 살인을 위해 망치를 드는 순간, 고등학생 시절 맞을 때 꽉 쥐던 손을 교차 편집했다.
벽에 캐나다의 설원 풍경 그림을 거는 이탕. 그리곤 하늘을 올려다본다. 화면은 그대로 살인 현장으로 이동했다. 비가 쏟아졌고, 살인을 저지른 이탕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스릴러의 이미지를 벗어났다. 살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음악으로 아이러니함을 더했다. 이탕이 살인을 하며 느낀 해방감과 통쾌함. 그 모순적인 감정을 전달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화. 그게 바로 모순이잖아요. 사실적인 것 위에 판타지가 오가고, 만화 같지만 딥한. 그런 모순을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이러니가 강하게 부딪힐 수 있게, 영상도 아이러니하게 만들었고요."
시점도 과감하게 전환시켰다. 4회까지는 이탕이 끌고 간다면, 후반부는 장난감과 송촌이 책임진다. 물론 호불호도 있었다. 집중력을 깨뜨린다는 것.
이 감독은 "안정적으로 갈 것이냐, 키치함과 문법적 파괴로 접근할 것이냐 고민했다"면서도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 캐릭터ㅇ난감
세 주인공은 강렬한데 다르다. 평범함에서 흑화까지 다변한 이탕, 한 마리의 재규어처럼 거친 장난감, 밑도 끝도 없이 무자비한 송촌.
배우들 본체 역시 개성 넘친다.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이름만 들어도 뚜렷한 색을 가졌다. 그럼에도 극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손석구 배우는 난감의 각색 회의 때부터 참여했습니다. 이희준 배우와도 송촌의 과거를 같이 만들었요. 무분별한 살인을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요. 그리고 우식 배우는 집요하게 질문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함께 답을 찾아나갔죠."
주변 인물들 역시 형식 파괴, 그 자체였다. 대표적으로 이탕의 사이드킥을 자처한 노빈 역의 김요한. 처음엔 일반인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노빈이었다.
"노빈은 사회생활을 많이 안 해본 사람의 어색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요한은 첫눈에 노빈처럼 보였어요. 오디션도 연기를 안 보고 대화를 했죠.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하더라고요."
이탕의 첫 살인 목격자 '여옥'을 맡은 정이서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독은 "더 싱크로율 높은 배우들이 있었다. 그러나 욕 안 먹을 것 같은 연기가 아닌, 욕먹어도 과감한 연기를 하더라. 그 면이 여옥스러웠다"고 밝혔다.
◆ 모순ㅇ난감
"너도 나랑 같다면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확신이 있는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진짜 있는 건지. 너는 나랑 다르냐? 다르다고 생각해? 확신 있어?" (송촌 / 8회 中)
송촌을 그저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라 생각하는 이탕. 그런 이탕에게 송촌은 '너는 다르냐'고 되묻는다. 살인이 능력인지 우연인지 고민하게 하는 모순.
그것이 결국, '살인자ㅇ난감'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무엇이 정의인가 묻지만, 끝까지 모순의 굴레를 놓치지 않았다. 장난감은 '넌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분명히 잡힌다'고 말하면서 이탕을 놓아준다.
그렇다면 이 감독이 생각하는 이탕의 살인은, 우연?
"초능력이라고 생각하실 텐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연인데 이런 우연이 일어날 확률이 0은 아닐거라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
아니면, 능력일까?
"그냥 '이런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에 그치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필요한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