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시대적 배경을 글로벌하게 보여줘야 했어요. 책임감이 있었죠. 그렇다고 재미도 포기할 순 없었고요."
배우 김남길이 동양 히어로가 됐다. 모래 폭풍이 부는 땅 간도에서 말을 탄 채 적들과 마주했다.
'액션 장인'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빠른 템포의 액션 시퀀스는 시청자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다. 스타일리시한 총격 신, 현란한 마상 격투 신 등도 압권이었다. 그렇게, K-웨스턴 장르가 탄생했다.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김남길은 "목이랑 승모근이 잔뜩 굳어서, 힘이 잔뜩 들어가서 봤다"며 웃었다.
"(넷플릭스 공개 이후) 편집 어떻게 됐고 어떤 식으로 완성이 됐는지 처음 보잖아요. 제가 참여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역사적으로 무거울 수 있는 소재 때문인 건지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디스패치'가 김남길을 만났다. 갈고 닦은 액션 연기의 정수를 마음껏 선보였다.
◆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도적: 칼의 소리'는 격동의 시대, 거친 황야의 땅 간도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물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된 이들이 도적(刀嚁, 칼의 소리)이 되는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이 있었어요. 침략 전쟁이나 역사적 사건들이 모티브인 작품을 재미있게 보고 나면 그때 일들을 찾아보게 되잖아요. 홍보대사 느낌은 아니어도 이런 사건이 있었고 잘 극복해왔다는 걸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넷플릭스가 내놓은 올 추석 기대작이었다. (넷플릭스는 매년 추석 시즌을 겨냥해 한국 시리즈를 공개했다. 2021년엔 '오징어 게임'을, 2022년 '수리남'이 같은 시기 베일을 벗었다.)
글로벌 2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톱 10'에 따르면, '도적: 칼의 소리'는 9월 4째주(25일~10월 1일) 글로벌 톱 10 비영어 부문 2위를 차지했다. 한국 넷플릭스에선 1위였다.
특히 일본 성적이 눈에 띈다. 항일을 주요 소재로 삼았음에도 톱10에 차트인했다. 최고 순위는 6위(24일)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감안하면 꽤 준수한 기록이다. 기존 시리즈와는 결이 다른 스토리, 액션 미학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렀다.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출연) 안 했을 수도 있어요. 늘 일제시대를 이야기할 때 일본과 조선, 양갈래로 나누잖아요. 내 소중한 것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게 뭔가 맞닿았죠."
◆ 도적의 리더, 이윤
이윤(김남길 분)은 도적단을 이끄는 우두머리다. 일본군 출신이다. 조선인 학살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고 간도로 향한다. 의병장 출신 최충수와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데에 온힘을 쏟는다.
액션 비중이 상당하다. 황야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대부분을 소화했다. 마상 액션도 해냈다. 말에 탄 채 리볼버 권총과 윈체스터 소총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드라마 '아일랜드'에 미안한 얘기지만 촬영할 때 눈만 뜨면 총을 몇 번씩 돌려봤어요. '아일랜드'에서 칼 액션 좀 하고 숙소 오면 총 돌리고.(웃음)"
전작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에 도전했다. 김남길은 "밝고 유쾌한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엔 진중한, 정적인 인물이었다. 감옥 안에서 (적을) 땡겨서 싸우면 안 되나, 먼저 죽이면 안 되나, 언제 하려고 하나 답답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윤에겐 가족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해요. 철도 부설 자금 탈취 사건도 일본이든 중국이든 다 상관없이 '우리의 터전을 위협하는 세력은 다 죽어야 해' 이거거든요. 근데 예전 (캐릭터) 같으면 찾아갈 텐데 (이윤은) 기다리는 성향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했어요."
◆ 상대 배역과의 케미
동료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이호정(언년이 역)과는 다양한 액션 합을 맞췄다. 주고 받는 동작으로 긴박감 넘치는 장면을 탄생시켰다.
김남길은 "호정이가 정말 예쁜 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하더라. 나 역시 누군가에게 피해준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내 경험치가 이만큼이니 너도 따라와' 하기 싫었다. 중간의 어디 쯤을 찾는 게 합을 맞추는데 중요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경험이 없으니 주먹 하나 뻗는 것도 힘들 수밖에 없죠. 팔다리가 길어서 자칫 엉성해 보일 수 있고요. 사실 여배우가 그런 역할 안 하려고 하는데 개의치 않고 열심히 하는 마음이 참 예뻤어요. 호정이는 잘 될 거예요."
상대역인 서현(남희신 역) 대해선 "디테일하게, 보는 사람이 답답할 수 있는 캐릭터를 묵묵하게 잘 표현했다"고 칭찬했다.
"서현이는 본인이 아무 것도 안 하는 캐릭터라는 걸 힘들어했어요. 생각해보면 모두 강해서 독립군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각자 역할이 있는 거죠. 강인함이 신체적으로만 표현되는 건 아니다,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 꼭 필요한 시즌2
김남길은 '도적: 칼의 소리' 시즌2 가능성을 언급했다. 시리즈 축소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됐다는 것.
애초 20부작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을 확정하면서 최종 9부작으로 바뀌었다. 이윤과 주변 인물들의 메인 서사만 남겼다.
"저는 (시즌2) 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풀리지 않은 이야기가 많거든요.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모여 있는지, 광일(이현욱 분)이와 저, 희신이가 어떻게 만났는지 다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수차례 시즌2 필요성을 강조했다. "넷플릭스가 압박감 느낄 수 있게 기자님들이 도와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크랭크인 시기까지 언급했다. 내년 가을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김남길은 "빨리 제작되지 않으면 시즌2 관심도 없다. '도적' 아니라 프리퀄처럼 만들어도 무방하게 된다"고 했다.
악역 관련 힌트도 남겼다. "시즌2에는 일본에서 전쟁 영웅이라고 칭송 받는 메인 빌런이, 더 센 빌런이 나온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이광일(이현욱 분)이나 마적들은 대의명분보다 본인 이익을 위해서 싸우잖아요. 친일파긴 하지만 왔다 갔다 여지가 있죠. 일본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메인 빌런이 나오면서 그들이 왜 다시 뭉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인터뷰 말미, 멜로 연기를 향한 갈증도 드러냈다.
"하고 싶죠. 근데 멜로가 요즘 너무 잘 없어서. 혹시 이렇게 얘기하면 멜로 안 쓰려다가도 대본 써서 주시지 않을까요?(웃음)"
<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