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구민지기자] "제 장점은 성실하다는 겁니다. 매번 산을 넘어간다는 생각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하 염정아)
데뷔 33년 차에,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물 공포증이 있음에도 깊은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배우'니까, '연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요. 그래서 자꾸 도전을 하게 되고요."
염정아는 열일하는 배우다. 20대에 데뷔, 30대 공포물(장화홍련), 장르물(범죄의 재구성), 40대엔 노조 이야기(카트), 학원물(스카이 캐슬), 뮤지컬(인생은 아름다워), 도사(외계+인)까지…
늘 다른 장르, 다른 얼굴로 끊임없이 관객과 시청자를 만났다. "사실 데뷔 초엔 강한 이미지였다. 40대 생활 연기 이후, 점점 시야가 넓어졌다"고 밝혔다.
50대엔 젊은 시절에도 못했던 역할을 소화했다.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에서 '해녀'로 분했다. "수영도 못하던 제가 해냈다.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디스패치'가 염정아의 연기 도전기를 들었다.
◆ "이런 캐릭터는 처음, 어려웠다"
염정아는 '엄진숙' 역을 맡았다. 선장 아버지를 따라, 동네 해녀들까지 지켜온 해녀 리더다. 살기 위해 해산물 채취 대신, 밀수판에 가담하게 된다.
그는 카리스마로 무게를 잡는다. 김혜수(춘자 역)와는 정반대다. 김혜수가 표출한다면, 염정아는 속으로 눌러 담는다. 드러나는 감정이 많지 않다.
연기로 나타내는 게 쉽지 않았다. "어려웠다. 진숙은 표현은 안 하지만,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다. 감정선의 중심을 잡고 이어가야 했다"고 토로했다.
염정아는 "감정을 이해하는데 오랜 고민이 따랐다. 이렇게 마음이 복합적인 캐릭터는 처음 맡아봤다. 잘해낼 수 있을까 고민도 됐다"고 덧붙였다.
대화로 해답을 찾아나갔다. "류 감독이 현장에서 늘 답을 줬다. 배우들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했다. 혼자선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 결과, 튀지 않는데도 밋밋하지 않았다. 순간순간 변하는 표정은 섬뜩하다. 순진함, 아픔, 억울함, 책임감, 원망, 한…, 모든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 "물 공포증, 하니까 되더라고요"
'밀수'는 수중 액션이 하이라이트다. 물질을 하던 평범한 여성들이 바닷속에서 격한 액션을 펼친다. 염정아도 물질과 다이나믹한 액션을 선보인다.
놀라운 건, 염정아는 불과 촬영 3개월 전까지 수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물 공포가 있었다. 평생 수영은 생각도 않고 살아왔었다"고 털어놨다.
류 감독 작품이기에 욕심이 났다. "사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었다. 물에서 숨 참는 것부터 배웠다. 10초, 20초, 30초, 점점 늘려나갔다"고 전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솔직히 콘티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귀가 힘든 순간도 있었고, 눈이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하나씩 극복하면서 훈련했다"고 말했다.
염정아는 "신기하게도 되더라. 완성본을 보니 멋있었다. 장면들이 아름다웠다. 수영도 못하던 내가 진숙을 연기해 냈다니, 놀라웠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그는 "배우들이 서로의 촬영을 지켜봤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물속이지만 든든했다. 서로 도움을 받으면서 촬영을 끝냈다"고 공을 돌렸다.
◆ "김혜수, 닮고 싶은 배우"
염정아는 김혜수와 완벽한 호흡을 선보인다. 절친에서 원수가 된다. 그러다 다시 동지로 변한다. 두 연기 베테랑이 극의 균형을 잡았다.
염정아는 "김혜수와는 1996년 '사과꽃향기' 이후 27년 만에 조우했다. 그때도 언니는 참 멋졌다. 늘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했다"고 떠올렸다.
27년 만의 김혜수는 어땠을까. 그는 "언니는 러블리 그 자체였다. 후배들만 위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래서 좋다'며 칭찬했다. 늘 챙겨줬다"고 말했다.
"(혜수) 언니가 '춘자'역을 너무 잘해줬어요. 덕분에 저도 잘한 것 같아요. 언니와 함께 했던 몇몇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수중 신을 예로 들었다. "잠수하며 스탠바이할 때, 감독의 '큐' 사인이 따로 없었다. 김혜수와 서로의 눈만 보고 위로 올라갔다. 그 짧은 순간에 의지가 됐고, 많은 것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김혜수는 그의 연기를 극찬했다. "저와 정반대다. 염정아는 힘을 빼고 연기하지만, 많은 걸 전달하는 배우다. 저는 힘을 더 빼야 하는 편인데 잘 안 된다"고 웃었다.
◆ "밀수, 많은 걸 얻은 작품"
염정아는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수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이 감독, 배우, 스태프 덕분이라는 것.
"해녀 역할 배우들과는 늘 함께였어요. 한 명이라도 물에 들어가면, 누구 하나 다른 곳을 보지 않았어요.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같이 박수 치고, 함께 울었던 현장이었어요."
남다른 애정을 전했다. "그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재밌었다. 맨날 깔깔거렸다. 소녀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후배들의 도움도 컸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의 노력도 짚었다. "다들 연기를 잘하더라. 조인성은 좋은 배우였다. 박정민은 말할 것 없이 아낀다. 고민시도 막내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전했다.
"저희는 성실하게 맡은 바 최선을 다했습니다. 관객들이 '정말 재밌다'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작품 중 최고 흥행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염정아는 계속해서 달릴 계획이다. "좋은 작품을 보면 욕심이 생기고, 의욕이 샘솟는다. 어려운 액션이라도 할 것이다. 하니까 다 되더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