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송혜교는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른다.
“연진아, 사라야, 혜정아”
성(姓)만 뺐을 뿐이다. 그런데 느껴진다. 드디어, 복수가 시작됐구나. 절대 (이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구나...
이것이 바로, 김은숙의 글이고 송혜교의 연기다. 김은숙이 쌓은 빌드업의 힘, 그리고 송혜교가 그린 캐릭터의 승리.
“멋지다, 연진아!”
“스튜어디스 혜정아!”
단지, 이름만 불렀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전율을 느낀다. The 김은숙이고, 송혜교의 GLORY인 이유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 김은숙의 빌드업
전작이 망작(?)이었다. '더킹'의 최종 시청률은 8.1%. 김은숙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스코어다. 그래서 나온 넝~담, "김은숙이 칼 갈았대."
김은숙이 칼을 갈았는지, 연필을 깎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사실.
김은숙은 자신이 만든 흥행 공식을 파괴했다. 백마 탄 왕자를 없앴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드러냈다. 심지어 항마력을 테스트하는 대사도 패스.
대신, 복수의 '빌드업'에 공을 들였다. 우선, 가해자의 서사를 차단했다. 그들을 향한 동정을 원천 봉쇄한 것. 마음껏 욕할 수 있게 판을 깔았다.
그 다음, 우연을 배제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연은 단 한 줄도 없었어”라는 말처럼, 복수의 설계자는 피해자. 도면대로 준비하고 실행했다.
일례로, 문동은은 필연적으로 교사가 된다. (다 가진) 박연진의 약한 고리, 즉 딸의 담임이 되면서 1:1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형국을 만들었다.
이처럼, 가해자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박연진이 지켜야 할 것, 전재준이 뺏어야 할 것, 이사라가 숨겨야 할 것, 최혜정이 올라가야 할 것...
문동은은 (학폭) 망나니의 칼을 판도라 상자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이 상자가 (시즌 2에서) 열리면, 각자의 칼춤에 서로가 베이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김은숙의 빌드업이다. 피해자는 단지, 당한 자. 가해자는 그냥, 가한 자. 그리고 피해자는 다시, 갚을 자. 가해자는 되레, 당할 자.
시청자는 피해자의 타락을 응원하고, 가해자의 추락을 기원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형벌은 안타깝지만, 가해자의 천벌을 기다리는 이유다.
◆ 송혜교의 Glory
2011년, 영화 '오늘' (이정향 감독). 송혜교는 약혼자를 죽인 소년을 용서한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용서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로 인해 해결된 것도 없다.
송혜교는 용서의 본질을 되묻는다. 용서가 (피해자의) 고통으로 연결된다면, 용서를 강요하는 게 미덕일까? 송혜교는 절절한, 그러나 절제된 연기로 용서의 역설을 꼬집었다.
(송혜교는 이 영화로 제12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송혜교는 2011년, 가해자를 용서했다. 영광은 얻었지만 평화는 없었다. 그리고 2023년, 송혜교는 복수를 시작했다. 천국행은 없겠지만, 시청자에겐 그의 복수가 천국이다.
송혜교는 27년 동안 35개의 얼굴을 연기했다. 멜로장인 로코여신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이미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에서 절제된 감정 연기로 깊은 내면을 전달했다.
'더 글로리'의 한 수는 바로, 송혜교의 연기다. 야윈 몸, 푸석한 얼굴, 무채색의 표정은 그저 거들 뿐. 송혜교는 입으로 웃지만 눈으로 우는... 문동은의 아픔을 110% 표현하고 있다.
"웃다보면 잊어버릴까 봐요. 내가 뭘 하는지..."
송혜교는, 아니 문동은은 또박또박 내뱉는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담담하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없이 (높고) 강렬하다.
"멋지다 연진아", "스튜디어스 혜정아", "사라야 지옥행이래"
송혜교는 감정의 응어리를 터트리지 않는다. 그의 저음은 분노와 조롱, 경멸과 멸시, 그리고 넝담의 함축물. 시청자는 통쾌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나 지금 되게 신나.”
송혜교의 톤은, (빌런 마다) 달라진다. "연진아", "혜정아", "재준아". 이 세글자로 차이를 만든다. 다정한 부름과 서늘한 각인. 이것이 송혜교의 연기다.
<사진출처=넷플릭스 '더 글로리'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