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두 딸 위해 원망·분노 자극해선 안돼" 이례적 당부
장인 앞에서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A씨(49)가 5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A씨와 피해자는 별거하며 이혼소송을 벌여왔으며, 부친과 함께 A씨의 집을 찾은 피해자에게 일본도(장검)를 휘둘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1.9.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장모씨(50)는 부모님이 이혼하고 계모 밑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게다가 장씨가 성년이 됐을 때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20대 중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서 일하던 중 아내 김모씨(40)를 만나 결혼했다. 열살이나 어린 아내를 만났고 두 딸까지 얻었다.
하지만 장씨는 아내를 일본도로 무참히 살해했다. 심지어 살해 당시 장인어른이 앞에 있었다. 자신의 어린시절 불행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애썼던 장씨였지만 결혼생활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결혼관계에 금이가기 시작한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씨의 절친한 고향 친구와 자신의 아내 김씨가 외도한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후 아내에 대한 장씨의 집착이 시작됐다. 자신의 딸들에게 불우한 가정사를 되물림 해주기 싫었던 장씨는 배신감에 휩싸였음에도 억지로 결혼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이후 장씨는 아내의 외출이나 돈 사용 등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간혹 외도사실을 거론하며 아내를 공격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김씨는 장씨와 자주 다퉜다.
관계가 되돌릴 수 없게 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김씨는 처남으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손실을 입었다. 이를 알게된 장씨는 딸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하게 나무라며 크게 다퉜다. 그 직후 김씨는 딸들과 함께 친정으로 가 장씨와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장씨는 김씨가 제출한 소장에서 자신이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장씨는 지속해서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갔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날은 김씨가 친정 아버지와 함께 옷가지를 챙기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 날이었다. 별거 이후 약 3개월 만이었다. 장씨는 김씨에게 협의 이혼을 제안하는 등 화해를 시도했지만 김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씨는 어린시절의 아픔 때문인지 평소 정서적 불안감, 분노, 우울에 시달리고 감정조절이 힘들었다. 가정 내에서 거친 언어를 사용하고 욱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이날 김씨는 장씨가 선물로 받아 보관하고 있던 도검을 발견했다. 김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빠 저기 봐 칼 있어"라고 얘기했다. 장씨는 이 말이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껴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도검으로 김씨를 살해했다.
재판부는 "20년 가까이 살아온 아내를 장인어른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살해했다"며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명의 어린 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사건 범행을 인정하고 오랜기간 피해자와 가정불화를 겪어오다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과 범행 후 즉시 119에 신고해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유리한 양형 조건으로 판단했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부모를 잃은 두 딸들을 위한 당부의 말도 남겼다. 김동현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가장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태어난 두 딸이다"며 "이제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 이들이 얼마나 놀래고, 두렵고 무서울지 모를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 유족분들은 피고인이 복역하게 될 것이지만 피고인에 대한 어떤 분노 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딸들의 올바른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며 "피고인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딸들이 충분히 성장을 해서 스스로 판단하게 할 수 있도록 어떠한 원망과 분노를 자극하는 것을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구진욱 기자(kjwowe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