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박혜진기자] 사카모토 류이치가 말했다.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만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류이치 역시, (자신만의) 독창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단,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독창성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류이치)
거장이 생각하는 '예술론'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것.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유희열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무의식(?)은, 앞서 말한 사카모토 류이치. '아주 사적인 밤', '내가 켜지는 시간' 등에서 일부 유사성이 발견됐다.
실제로 유희열은 과거 다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류이치를 가장 존경한다. 20~30대는 학생처럼 그 분 (음악)을 공부했다. 당연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희열은 '레퍼런스'가 관대한 시대에서 작곡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영향을 주고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졌다.
요즘은 다르다. "내가 듣기에 비슷한데"라고 하면, 그냥 표절이다. "모든 예술은 기존 창작물의 영향을 받는다"는 류이치의 말도, 리스너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디스패치'는 유희열의 음악 8곡을 오선지에 옮겼다. "들어보니 비슷한데"라는 이유로 표절 논란에 탑승하고 싶진 않았다. '귀'로 듣고, '눈'으로 따져보면 어떨까. (저작권 문제로 곡 전체를 담지 못했다. 원곡 전체를 듣고 비교하길 추천한다.)
먼저 '아주 사적인 밤'이다.
① 사카모토 류이치 '아쿠아'(1999) - 유희열 '아주 사적인 밤'(2021)
이 곡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건, 메인 테마다. 형식으로 나누어 보면, '아쿠아'는 A-B-A-B'. 즉, A-B파트를 메인 테마로 삼고 있다. '아주 사적인 밤'에서도 해당 A-B파트가 비슷하게(A'-B-C-D-A'-B'-C-D') 사용됐다.
2곡의 키(조성)는 G키로 동일하다. A-B파트의 코드 진행(G-C-G-Em7-D6-C)도 같다. 다만, 이는 음악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진행이다. 코드 진행이 같다고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것.
이 기준으로, 곡 전체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A·B' 파트를 제외하면 멜로디는 다르다. 박자 역시 같지 않다. '아쿠아'는 4/4박자, '아주 사적인 밤'은 12/8박자다.
연주 스타일은 어떨까?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 류이치는 곡이 진행될수록 음역대를 넓게 쓴다. 하이톤이 많고, 음의 진폭이 크다. 피아노 터치도 세진다.
유희열은 저음 위주로 연주한다. 곡 분위기는 웅장하고 정적이다. 음의 진폭이 크지 않다. '아주 사적인 밤'이 잔잔하다면, '아쿠아'는 다이내믹이 있다.
일각에서는 두 곡의 악기 구성, 사운드톤, 리듬이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두 곡이 피아노 연주곡이라는 것을 망각한 지적이다. 악기 구성이 동일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곡) 전체를 들어보면, 가는 길이 다르다. 전개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적인 밤'은 그야말로 '밤'이다. 조용하고 정적이다. '아쿠아'는 뒤로 갈 수록 '물'처럼 요동친다.
유희열의 실책은, 검증의 시간을 간과한 것. 두 곡의 코드진행은 G-C-G…다. 기본 중의 기본 코드다. (멜로디는 코드톤으로만 쓰여져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유희열은 기본적인 코드를 사용한 만큼, 무의식을 의식했어야 했다. 내 곡이 다른 곡의 색채와 닮은 건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② 사카모토 류이치 '1900'(2020) - 유희열 '내가 켜지는 시간'(2021)
사카모토 류이치의 '1900'은 <레-솔-라-시-도-시-라-솔-레-미-레>로 시작한다. 유희열의 '내가 켜지는 시간'은 <라-레-미-파#-솔-파#-레-미-시-도#-라>이다.
계이름만 놓고 보면, <레-솔-라-시-도-시>와 <라-레-미-파#-솔-파#>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내가 켜지는 시간'을 G키로 내리면, <라-레-미-파#-솔-파#>은 <레-솔-라-시-도-시>로 변한다.
곡 전체를 들어보자. 두 곡의 연주는 다른 흐름으로 전개된다. 멜로디도 다르고, 리듬도 다르고, 박자도 다르다. '1900'은 12/8박자, '내가 켜지는 시간'은 4/4박자다.
그럼에도 불구, 두 곡이 비슷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도입부 '레솔라시도시' 영향이 크다. 둘 다 피아노 연주곡. 해당 선율이 더욱 선명하게 꽂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표절로 볼 것인가. 피아노 연주곡의 특성상, 피아노 선율이 곡을 지배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비슷한데"라고 퉁 칠 수도 있다. '레솔라시도시' 외에는 겹치는 게 별로 없다.
③ 타마키 코지 '해피 버스데이'(1998) - 성시경 '해피 버스데이 투 유'(2002)
유희열은 왜, 제목까지 '해피버스데이(투유)'로 했을까. 타마키 코지의 '해피버스데이'(1998)와 같다.
유희열의 '리스펙트' 목록에 타마키 코지도 들어가 있다는 건, 그의 오랜 팬이라면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코지를 향한 '오마주'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우선, 눈으로 (악보를) 봐도 도입부는 닮았다. 코드 진행이 일치한다. 두 곡 모두 Cmaj7-Cdim7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Cdim7을 주목하자. Cdim7은 두 곡의 다이아토닉 스케일에서 나올 수 없는 코드다. 다이아토닉 스케일이란, 메이저 스케일로 이루어진 코드다.
(이 곡은 C메이저 곡이다. 따라서 대부분 C메이저 스케일로 이루어진 코드들, 즉 Cmaj7, Dm7, Em7, Fmaj7, G7, Am7, Bm7(b5)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Cdim7은 리하모니된 코드다.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 Cdim7은 도, 미♭,솔♭,시♭♭로 구성, 불안정한 사운드를 낸다. 그래서 곡에 텐션을 준다. 더불어, 두 곡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결정적 역할도 한다.
게다가 ① 하필, 제목도 유사하다. ② 하필, 한 템포 쉬고 보컬이 시작된다. ③ 하필, '해피 해피'가 2번 연속 반복된다. 가사와 테마의 일치, 우연이라 보긴 어렵다.
다만, 2000년대 초반의 관행을 고려해 볼 수는 있다. 그 때는, 레퍼런스의 시대다. 1~2마디를 참고, 새롭게 발전시키는 게 하나의 작법처럼 여겨졌다. 물론, 시대가 면죄부는 될 수 없다.
④ 퍼블릭 어나운스먼트 '바디 범핀'(1998) - 하우두유둘 '플리즈 돈 고 마이 걸'(2013)
"알앤비를...이 형이 무슨 본 게 있대" (유재석)
2013년, MBC-TV '무한도전'. 유희열은 '플리즈 돈 고 마이 걸'을 썼다. 그는 안무를 부탁하며 한 팔을 고정하고, 다른 팔을 앞뒤로 흔드는 춤을 보여준다.
우연일까, 일치일까. 이 안무는 퍼플릭 어나운스먼트의 '바디 범핀'(1998) 안무와 같다. 그리고 9년 뒤, '플리즈 돈 고 마이 걸'은 표절 시비에 올랐다.
두 곡은 알앤비 장르로, 마이너(minor) 키다. '바디 범핀'을 '플리즈 돈 고 마이 걸' 첫 음에 맞춰 전조했다. 도입부의 계이름은 다르지만, 멜로디 흐름이 유사하다.
두 곡 모두 첫 박에 한 템포 쉬고 들어간다. 32분음표로 박을 쪼개는 출발도 비슷하다. (굳이 계산하면) 한 마디 정도 같다. 둘 다 박이 많이 쪼개진 곡이기에 다른 곡의 두 마디 정도 된다.
두 마디가 같다고 표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시비에 휘말린 건 이 곡의 아이디어 때문이다. 게다가 포인트 안무까지 비슷하다. '바디 범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반면 '무도가요제'는 예능이다. 이 곡을 패러디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희열은 '플리즈 돈 고 마이걸'에서 1990년대 알앤비 클리셰를 총망라했다.
사실, 알앤비는 유희열의 종목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방송에서 "보이즈투맨 같아. 솔리드 같아. 예전 느낌 나지 않아"라는 멘트도 한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패러디'라 천명하는 게 나았다.
⑤ 비틀즈 '오! 달링'(1969) - 윤종신 '환생'(1996)
비틀즈는 1969년에 '오! 달링'을 발표했다. 폴 매카트니가 작곡했다. '환생'은 1996년, 유희열과 윤종신이 함께 만든 곡이다.
우선, 두 곡의 키는 다르다. '오! 달링'은 A키, '환생'은 D키다. '오! 달링'의 피아노 라인을 D키에 맞춰서 바꿨다. <레-레-레-레-미-파#-솔-솔-솔-솔-솔#-라>다.
'환생'의 일렉 기타 라인을 악보로 기보했다. <레-레-레-레-미-파#-솔-솔-솔-솔-파#-미>. 이 주요 라인이 중간중간 반복되는 셈이다.
두 곡 모두, 12/8박자. 한 마디에 8분음표가 12개 들어간다. 둘 다 8분음표로 박이 계속 쪼개진다. 결국, 일정 부분의 멜로디 라인과 8분음표로 박을 쪼개는 형식이 비슷하다.
하지만 장르의 유사성을 고려하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일단, 두 곡은 슈가팝 장르를 기본 뼈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코드와 라인은 슈가팝에서 흔히 사용된다.
일렉 기타 연주자의 장르적 연주법도 한몫했다. 실제로, 특정 장르에서 클리셰처럼 쓰이는 연주 방식이 있다.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와 톤이 곧 장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⑥ 토토 '리아'(1986) - 유희열 '넌 어떠니'(1997)
유희열의 딸 이름은, 리아다. 그는 여러차례 "토토의 '리아'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딸 이름도 리아로 지었다"고 '리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유희열의 '넌 어떠니'(1997)와 토토의 '리아'(1986)는 비슷하게 들린다. '리아'의 원키인 E를 '넌 어떠니'의 G키로 변경하면, 2번째 줄 진행 코드가 같다.
단, 멜로디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 두 곡이 비슷하게 들리는 까닭은? '편곡'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도입부, 두 곡은 일렉 피아노로 (각) 같은 라인을 2번 반복한다. 그 다음, 16비트로 쪼개지는 드럼이 들어온다. 하필, (드럼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비슷해 더 귀에 남는다.
'리아'의 경우 드럼이 들어오고 2마디가 흐른 뒤, 3번째 마디부터 브라스가 추가된다. '넌 어떠니'는 드럼이 들어오고 한 마디 반 정도 흐른 후, 브라스가 시작된다. (두 곡의 브라스 음색은 다르다.)
게다가 일렉 피아노와 드럼 16비트가 곡 전반에 깔려 흐른다. 덧붙여, 보컬의 코러스를 풍성하게 배치한 점도 닮았다. 이런 편곡적인 요소가 두 곡의 바이브를 비슷하게 만들었다.
유희열은 토토에 대한 존경을 편곡(오마주)으로 표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때는 '팝과 비슷하다'고 극찬받았던 시기. 지금은 '팝을 따라했네'라며 비난받는 시기라는 것.
⑦ 토미타 랩 '에이프릴 풀'(2011) - 유희열 '너의 바다에 머무네'(2014)
토미타 랩은 2011년, '에이프릴 풀'(エイプリルフール)을 발표했다. 유희열은 3년 뒤에 '너의 바다에 머무네'(2014년)를 썼다. 노래는 김동률이 불렀다.
두 곡은 코드도, 멜로디도 모두 다르다. ⑥번의 경우처럼, 편곡이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인트로를 살펴보자. 연주와 악기 구성이 비슷하다. 피아노가 멜로디 라인을 치고, 기타가 아르페지오로 펼쳐서 연주한다.
코드 진행에도 특징이 있다. 두 곡 모두 1~2마디에서 페달톤(왼손 베이스는 같은데, 오른손 코드만 계속 바뀌는 진행)을 사용한다. 왼손으로 F를 찍고, 오른손으로는 다른 코드들을 짚어나간다.
아주 흔한 진행이지만, 5~6마디에서는 코드가 Major에서 minor로 바뀐다. '에이프릴 풀'은 한 음을 하행하는 멜로디 형식을 2번 반복한다. '너의 바다에 머무네'에서도 이런 전개를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인트로의 코드 진행이 유사하다. 악기 구성과 연주법도 비슷하다. 그래서 두 곡은 닮았다. 하지만 16비트, 반음계 하행 진행, 아르페지오 연주, 페달톤은… 수백, 수천 곡에서 쓰였다.
⑧ 조동익 '동쪽으로'(1994) - 유희열 '공원에서'(2008)
조동익의 '동쪽으로'. 재즈 밴드 연주곡으로, 1994년에 발표됐다. 유희열은 '공원에서'는 피아노 소품집이다. 고등학생 때 만든 곡이며, 2008년에 릴리즈했다. 조동익은 유희열이 존경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공원에서'를 '동쪽으로'와 같은 G키로 변경했다. 브릿지 도입부의 멜로디와 코드가 비슷하다. 한 마디 안에 사용된 계이름도 같다. '동쪽으로'의 첫 마디는 <도-도-도-도-시-라-도>, '공원에서'도 <도-도-도-도-시-라-도>가 쓰였다.
한 음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방식도 닮았다. '동쪽으로'에선 3연음으로 연주한다. '공원에서'도 마찬가지. 한 음을 반복해 연주하는 기법이 나온다. 단, (1~2마디를 제외한) 멜로디와 코드는 다르다.
3연음은 재즈에서 흔히 쓰이는 연주 방식이다. 재즈의 클리셰에 가깝다. 그리고 흔한 클리셰를 자기 것으로 발전시키는 건, 유희열의 장기다.
1990년대, 그때는 그랬다. '팝' 같다는 말은 최고의 극찬이었다.
어쩌면 유희열은, 그런 음악을 한국식으로 들려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스스로, 토이 앨범을 (장르의) '총전시장'이라 표현했으니까.
유희열은 그렇게, 클리셰를 조합하고 해체했다. 그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것은, 레퍼런스의 시대에는 통용됐다.
세계적인 거장 류이치도, 100%의 순수 창작은 어렵다고 말한다. 영감을 받고, 영향을 받고, 그 사이에 10%의 독창성만 가미해도 훌륭하다고 고백했다.
류이치의 말이 유희열에게 (작은) 위안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해답은 아니다. 유희열의 작업 방식은 그 시대의 관행일 뿐, 답습할 명분은 없다.
물론, 대중의 여유도 필요하다. 2022년 기준으로 그 시절 음악 전체를 매도할 수 없다. 시대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2~3마디 클리셰를 표절의 증거로 삼아선 안 된다.
“치열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동료 음악인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유희열)
유희열이 다시 해야 할 것은, 관행과 강박에서 벗어나기. 귀에 박히지 않더라도, 그의 철학이 담겨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대중은, 유희열을 좋아했다.
<악보=김선혜>
<영상=김정연기자(Disp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