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연기. 단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왔다. 그리고, 드디어 터졌다. 9년 만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심지어 신드롬급 인기다.
들뜰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선재를 아직은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아요.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 제 연기를 돌아보면서 부족함을 채워 다음 연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변우석)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먼저 생각났다.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기 전에, 다음 성장을 내다봤다. 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눈을 마주치며 경청하고 진중히 고민했다.
'디스패치'가 만난 변우석은, 겸손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잘 될 수 밖에 없는, 배우의 자세였다. 그냥 맞은 인기가 아니었다. 묵묵히 준비하고,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변우석은 선재를 만났고, 우리는 변우석을 발견했다.
◆ "그래도, 10년은 버티자"
시작은 모델이었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의 진짜 꿈은 배우. 변우석은 "무엇을 해야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연기라면 평생 행복할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벽은 높았다. 오디션에만 100번 넘게 떨어졌다. 녹록지 않았다. 심지어 대본 리딩을 하고도 잘린 경험도 있다. 포기를 생각한 순간도 수백번.
"행복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전혀 즐기지 못했어요. 거절당하는 것보다, 행복하지 않은 제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죠. 그래도 10년은 버티자는 마음으로 견뎠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웹드라마, 단역, 조연.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도전했다. 천천히, 진득하게, 견뎌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tvN '청춘기록'(2020년), KBS-2TV '꽃 피면 달 생각하고'(2021년). 연달아 주연을 맡았다. 크게 주목 받진 못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았다. 대신 공부를 했다. 또래 배우들과 연기 스터디도 만들었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터디를 시작했죠. 카메라 울렁증도 있고, 트라우마도 있었거든요. 연기적인 고민을 공유하고, 심리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가면서 건강한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 그렇게, 선재가 왔다
tvN '선재 업고 튀어'는 로맨틱 코미디다. 열성팬 임솔(김혜윤 분)이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 분)를 살리기 위해 2008년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타임슬립이다.
소재의 특성상, 변우석은 10~30대까지 모든 서사를 연기해야 했다. 선재는 수영을 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밴드 보컬이 된 인물. 수영과 노래가 가능해야 했다.
쉽지 않은 역할이지만, 과감하게 선택했다. 변우석은 "'이런 대본이 나한테 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면서 "놓치기 싫은 대본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3개월간 수영을 배웠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OST도 직접 불렀다. 그는 "내 드라마의 OST를 부르는 게 꿈이었다. 심지어 그런 기회까지 온 것이다. 진짜 행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비는 따로 있었다. 여러 버전의 선재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 변우석은 "처음 본 대본에는 고등학생 선재와 34살 선재만 있었다. 그렇게 많은 선재가 있는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선재, 34살 선재만 해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연기해야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결론은, 매 순간 모든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 변우석이 아니면 안 됐다
변우석은 끈질기게 감독과 작가를 괴롭혔다.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나눴다. 현장에서 소통하는 것,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선재의 감정에 공감하려 노력했다.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선재의 감정에 이입하려 했습니다. 몰입하기 어려웠던 장면은 제가 아닌 선재로서 이해해 보려 했고요."
김혜윤의 역할도 컸다. 변우석은 "혜윤이가 있어서 지금의 선재를 연기할 수 있었다"며 "주는 감정을 잘 받기만 해도 선재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혜윤이가 솔이를 연기해 줘서 감사했습니다. 우는 신이 유독 많았어요. 댐에 물이 차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데…. 저절로 몰입될 수 밖에 없었죠. 감정 연기에 대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변우석이 아닌 선재는 상상할 수 없었다. 10대의 풋풋함, 20대의 청춘, 30대의 무르익은 얼굴까지 모두 다르게 그려냈다. 목숨까지 건 순애보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노래는 기대 이상이었다. 밴드 이클립스의 '소나기'는 멜론 톱 100 차트에서 4위까지(6월 5일 기준) 올랐다. 빌보드에도 등장했다.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 199위로 진입한 것.
이클립스 콘서트 요청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멤버들과 '할 수 있으면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를 계속 기억해 준다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겸손을 드러냈다.
◆ 변우석 업고 튀어!
'선업튀'를 넘어, 변우석 신드롬이다. 대본은 전에 비해 10~20배 가까이 늘었다. 드라마뿐 아니라 광고, 예능 등 각 분야에서 '변우석 앓이'를 시작했다.
그의 첫 스크린 데뷔작 영화 '소울메이트'(2023년)는 극장에 다시 소환됐다. 아시아 팬미팅 투어도 모두 매진이다. 국내 티켓 예매에는 무려 70만 명이 몰렸다. 역대급 경쟁률에 '주제 파악 해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모든 게 꿈 만 같아요.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제 사진이 걸리다니요. 음원차트 순위, 단관 매진, 팝업스토어,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 '이게 맞아?" 하면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하."
모델, 단역, 조연, 그리고 주연까지. 배역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선재 업고 튀어' 인기에 (흑역사에 가까운) 과거 영상들이 다시 화제도 됐다.
변우석은 "과거 영상까지 다 '끌올'됐다. 처음에는 엄청 부끄러웠다"면서도 "그래도 행복하다. 선재가 아닌 변우석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 같아서 즐겁다"고 털어놨다.
"캐릭터를 넘어 변우석을 궁금하시는 거잖아요. 모델 생활까지 하면 10년 넘게 활동했어요. 제 인생의 반을 들여다보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드라마처럼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지울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선재를 얻기 위해 그 순간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돌아가 똑같이 최선을 다해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연기를 엄청 잘하고 싶어요"
10년 전, 평생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연기에 도전했다. 그러나 배우가 되는 과정은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2024년의 변우석은, 어떤 마음일까.
"선재를 연기하면서 솔과 둘만 있다고 느낄 정도로 몰입한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렸죠. 완벽히 몰입했을 때 느꼈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 기억만으로도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변우석의 차기작에 주목하고 있다. 부담감도 클 것.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부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은 안 하려 해요. 지금 부족한 것을 먼저 보완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 다음 작품을 한다면 잘되지 않을까요?"
인생작을 만났다. 이름 대신 선재라 불릴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았다. 10년 내내 기다려온 순간이다. 하지만 인기가 그의 종착지는 아니다. 이제 시작일뿐.
변우석은 인기 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꿈꾼다.
"연기를 잘하고 싶어요. 엄청나게 잘하고 싶어요.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합니다. 이번에도 제 눈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명확히 보였어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사진제공=바로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