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구민지기자] 배우 유해진과 이제훈이 만났다. 영화, '모럴해저드'(가제)다.
"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1등 소주 회사와 호시탐탐 기업을 노리는 글로벌 투자사가 운명을 걸고 맞서는 이야기"
'모럴해저드'는 2024년 기대작이다. 무엇보다, 유해진과 이제훈이다. 두 배우는 충무로 흥행공식. 이번 작품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제작사는 '택시운전사',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말모이', '유령' 등을 만든 '더 램프'. 명확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다.
감독은, 신인 최윤진. 영화사 '꽃'의 대표다. (영화 '심해' 각본 탈취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그 최윤진이다.) '모럴해저드'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모럴해저드'가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남의 대본을 고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심해' 처럼, 이번에도 다시 탈취 논란이 불거졌다.
'모럴해저드'는 최윤진 단독 집필일까. 아니면 원안이 있을까. 디스패치가 최윤진 감독의 '모럴해저드'와 박현우 작가의 '에너미'를 비교했다.
◆ 발단 : 최윤진 vs 더램프 통화
2023년 7월, 제작사 PD가 최윤진 감독에게 전화했다.
PD : 원안 작가님 연락처랑 디벨롭된 시나리오 내일까지 보내주세요.
최윤진 : 정확하게 말하겠는데. '모럴해저드'는 내가 혼자 썼고, '에너미'는 론스타 이야기지.
최윤진 : 론스타(에너미)와 모럴해저드 내용은 전혀 달라. 궁금한 걸 왜 상관도 없는 작가한테 물어?
PD : 늘상 체크하는 건데요. 이런 건 정확히 확인해야 하니까요.
최윤진 : (박현우는) 론스타 시나리오 작가라니까.
PD : 아니 감독님! 에너미로 시작했다고 저한테도 첨에 그러셨잖아요.
최윤진 : 아 그건 론스타라니까.
제작사 PD : (연락처) 왜 못주시는 건가요? 연락처는 크레딧 정리 관련해서 여쭤보는 건데.
최윤진 : 크레딧 정리할 필요가 없다니까. (2023년 7월, 최윤진 통화 中)
사건의 발단은, 크레딧 정리다. 제작사는 절차를 밟았고, 감독은 절차를 피했다.
최윤진 주장의 핵심은, '모럴 해저드'와 '에너미'가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것. 여기서 필요한 건, 두 각본이 얼마나 어떻게 다르냐는 대.본.체.크.다.
◆ 전개 : 모럴해저드 vs 에너미
① 텍사스 다운타운
자막 : 2002년 6월, 텍사스 오스틴.
고급정장에 브리프케이스 든 인범. 핸드폰을 끼고 급하게 택시를 부르고 있다.
인범 : 지금 탑니다. 30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바로 택시에 올라타는 인범. 시야에 지팡이를 짚고 택시를 잡으려 애쓰는 노부부가 보인다.
(인범이) 올라타자 붕~ 출발하는 택시. 몇 미터 가더니 멈춘다. 다시 내리는 인범.
인범 : (노부부 향해 손짓하며) 저기요! 이거 타고 가세요.
땡큐, 땡큐 쏘머치- 연발하며 택시에 올라타는 노부부.
인범, 다시 주위를 두리번대며 택시를 찾는다. 시계를 보는 짜증스런 얼굴.
도로 맞은 편, 담배를 피우며 아까부터 인범을 보고 있던 중년의 한국계 택시기사.
담배를 탁 끄더니 택시에 올라타 차를 능숙하게 돌린다. 인범 앞에 딱 서는 택시.
② 뉴저지 다운타운
유유히 흐르는 허드슨강. 맞은편으로 보이는 뉴저지 솔퀸 타워.
자막 : 1997년 8월.
핸드폰을 끼고 급하게 택시를 부르고 있는 남자. 에르메스 넥타이에 수트를 입은 인범 (30대).
다급하게 택시를 붙잡는데, 옆으로 택시를 잡으려고 애쓰는 노부부가 보인다.
택시 붕~ 출발하더니, 몇 미터 가서 멈추고 내리는 인범.
인범 : (노부부를 향해 손짓) 저기요! 이거 타고 가세요.
땡큐, 땡큐 쏘머치- 연발하며 택시에 올라타는 노부부.
인범, 다시 주위를 두리번대며 택시를 찾는데,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도로 맞은 편, 담배를 피우며 아까부터 인범을 보고 있던 장년의 한국계 택시기사.
담배를 탁 끄더니 택시에 올라탄다. 차를 능숙하게 돌려 인범 앞에 딱 서는 택시.
①은 박현우 작가의 '에너미' 오프닝이다. ②는 최윤진 감독의 '모럴해저드'.
우선, 텍사스가 뉴저지로 바뀌었다. 시간도 2002년과 1997년으로 다르다. 주인공(인범)의 대사는 같다. 지문은, (아주) 살짝 차이나는 정도. 복붙한 문장도 여럿이다.
에너미 : 인범, 다시 주위를 두리번대며 택시를 찾는다. 시계를 보는 짜증스런 얼굴.
모럴해저드 : 인범, 다시 주위를 두리번대며 택시를 찾는데,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 위기 : 은행이 소주로 바뀌었다
'에너미'는 론스타 사태를 모티브로 했다. 미국계 헤지펀드 '솔퀸'이 정부 관료와 짜고 국채은행(세한은행)을 삼키는 내용.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각성하고, 응징한다.
'모럴해저드'는 기업사냥의 타킷을 소주회사(국보)로 바꿨다. '솔퀸'의 계략, '검은손'의 조력 등 큰줄기는 같지만, 기업 인수 방식은 (은행 인수 때와는) 조금 다르다.
다만, 주인공 '인범'을 비롯해 캐릭터들의 성격, 특징, (처한) 상황 등은 비슷하다.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도 일맥상통한다. 불법, 부정, 부패, 각성, 복수, 사이다.
사실, 두 시나리오는 한 배에서 나왔다. 박현우 작가는 최윤진이 영화사 '꽃'에서 고용했던 신인. 2018년 작가계약을 맺고, 론스타를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박 작가는 2019년 7월 30일, '에너미' 2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8월 5일. 작가 계약 해지를 요청받았다. 그때 받은 원고료는 2,000만 원.
(김기용 작가의 '심해' 데자뷰다. 김 작가는 2018년 11월 23일 '심해'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다 20일 뒤, 계약 해지를 통보 받았다. 원고료 1,500만 원으로 끝.)
최윤진은 2020년 10월 13일, 제작사 '더 램프'와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각본 최윤진·연출 최윤진>으로 도장을 찍었다. 각본료로 받은 금액은 1억 원.
박현우 작가는 2023년 7월, '에너미' 진행 소식을 듣게 됐다. 최윤진이 '에너미'를 이용해 '모럴해저드'를 썼다는 내용이다. 그 작품으로 감독 및 각본 계약을 맺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삭제'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박 작가는 "내가 창작한 시나리오가 동의도 없이 수정됐다"며 "원작자 크레딧을 지우고 판매했다"고 지적했다.
"모럴해저드는 '에너미'의 시놉시스, 트리트먼트, 인물소개, 시나리오 등을 펼쳐 놓고 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요 소재인 공격대상을 국책은행에서 소주회사로 바꾸면서 살릴 건 살리고, 없앨 건 없애고, 새로 쓸 건 새로 쓴 정도? 취사선택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박현우 작가)
최윤진 대표는, 이번에도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에너미'는 자신과 박현우 작가의 공동집필이라는 것. 반면, '모럴해저드'는 오롯이 혼자서 만든 이야기라고 항변했다.
2024년 1월 16일, 최윤진이 '더 램프' 대표에게 보낸 해명 메일이다.
"에너미는 트리트먼트 단계부터 저와 공동집필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박현우 초고를 제가 손보고, 다시 박현우가 2고를 썼고, (계약을 해지하고) 제가 3고를 썼습니다. 그러다 '블랙머니'가 개봉돼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고, 저 혼자 모럴해저드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습니다."
◆ 절정 : 1번 각본은 누구인가?
최윤진 감독은 크레딧 논란이 불거지자, 한 발 물러났다. 박현우 작가를 '크레딧'에 올리겠다는 것. 지난해 7월, 제작PD와 나눈 통화 내용을 뒤집었다.
"내가 '모럴해저드'를 혼자 썼다. 이건 '에너미'와 다른 작품이야. '에너미'는 론스타 이야기일 뿐이다. (원안 작가와) 크레딧을 정리할 필요가 없다." (최윤진 전화통화, 2023. 07)
"처음 썼다고 무조건 크레딧 1번은 문제가 있다. 다른 작가와 감독이 발전시켰다면 기여도를 고려해야 한다. 크레딧은 나중에 최종 정리하면 된다." (최윤진 매체 인터뷰, 2023. 12)
최윤진은 '기여도'를 따지자고 어필했다. <시나리오를 먼저 썼냐>보다 <영화로 먼저 발전시켰냐>가 중요하다는 논리. 한 마디로, 각본과 투자의 하이브리드(?)다.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의 생각은 어떨까? 3명의 베테랑 작가들이 두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그들은 (작가 정보 없이) '에너미'와 '모럴해저드'를 블라인드 비교했다.
조정위원들의 판단은, 박현우 작가가 원안 작가라는 것. "박현우 작가를 1각본, 최윤진 감독을 2각본으로 하는 게 적합하다"며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렸다.
"무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집필해 낸 최초 작가의 공로는, 후속 작가가 넘어설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박현우에게 원안 크레딧과 각본 크레딧 첫 자리를 부여하는 게 합당하다." (크레딧 조정 결정문)
◆ 결말 : 제2의 최윤진 사태는 안된다
누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을까. 의심할 여지 없는, 박현우다. 그리고 작가조합은 "최초 작가의 공로는 후속 작가가 넘어설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불구, 최윤진만 다른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소재가 바뀌었으니, 다른 영화라는 요지. "에너미는 론스타고, 모럴해저드는 소주회사"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이유다.
작가조합은 일침을 가했다. 박현우 작가가 창조한 이야기의 '얼개'와 '정서'가 (모럴해저드에) 그대로 유지됐다는 것.
"박현우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최윤진이 수정한 시나리오는 콘셉트, 극적인 구조, 주요 인물 설정, 인물 관계, 주제 의식, 결말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2가지 변화를 만들었다. " (크레딧 조정 결정문)
박현우 작가는 '디스패치'에 "계약을 해지하고, 원고를 수정하고, 나중에 자신의 창작물로 탈바꿈했다"며 "김기용 작가(심해)도, 나도, 그런 식으로 이용됐다"고 꼬집었다.
작가조합 및 작가협회도 현재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김병인 작가조합 대표는 "제 2의 최윤진을 방지하기 위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미국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사무국에 저작권을 허위등록하면 건당 최대 5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여기에 25만 달러(3억 3,000만 원) 상당의 벌금도 부과된다.
한국 저작권법(제136조)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형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표절 시비를 가릴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K-컨텐츠의 힘은, 결국 창작자에서 출발합니다. 허위 저작권 등록자에게 징벌적 과징금을 추징해야 합니다. 제보자 포상금 지급제도 등도 마련하고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제2의 최윤진 사태를 방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병인 작가조합 대표)
◆ 다시 : 에너미 vs 모럴해저드 비교
두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최인범. 그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난 수재로, 미국 헤지펀드 '솔퀸'에서 근무한다. 그러다 한국기업 인수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단, 인범은 다크 히어로. 죄책감에 빠져 음모를 폭로한다. '에너미'와 '모럴해저드'는 이런 설정을 공유한다.
'에너미'와 '모럴해저드'의 거대 악도 일치한다. 바로, 법률사무소 '무명'(목숨을 주무른다는 뜻의 한자어). 무명은 솔퀸을 불법적으로 돕는 보이지 않는 손.
최인범의 부모님 캐릭터도 똑같다. 두 작품 모두 엄마의 이름이 '양수옥'. 탄탄한 교회 인맥으로 아들을 도우려 애쓴다.
'종록'도 두 작품에서 모두 등장한다. '에너미'에선 M&A 브로커 임종록, '모럴해저드'에선 소주회사 재무이사 오종록이다. 인범의 심경변화를 이끌어내는 인물이다.
다른 점도 많다. 소재가 국책은행에서 소주회사로 바뀐 만큼, 인수 방식이 달라졌다. '모럴해저드'에는 그룹 부실채권 매입 판매, 재벌회장 부패 등이 추가됐다.
▲ 오프닝을 알리는 인범의 택시 신.
▲ 법률사무소 무명의 등장.
▲ 엄마 양수옥의 등장과 조력.
▲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인범.
한편, 최윤진 감독이 '모럴해저드' 각본 분쟁에 관한 입장을 전해왔다. 아래는 최 감독의 입장 요약이다.
"에너미는 제 최초 기획안과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저와 박현우 작가가 에너미2고까지 공동 집필했습니다. 박현우 작가는 에너미 2고까지 작업을 했고, 스스로 계약해지를 요청해 중단했습니다. 모럴해저드는 3년 3개월 간 11고 각본을 오롯이 저 혼자 집필했습니다. 다만, 기여도를 감안하여 <공동각본 최윤진 박현우> 순서에는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