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ㅣ칸(프랑스)=구민지기자] "어떻게 저런 연기가 가능할까요? 이런 배우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송강호를 영화 '브로커'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그도 그럴 게, 송강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神이다.
올해로 데뷔 33년 차. 그의 필모그래피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한국 배우 최초로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배우, 한국 영화 100년사 최고의 남자배우 1위….
그 어떤 찬사도, '송강호'라는 이름 앞에 붙으면 납득할 수 있다.
"송강호는 상황을 몸으로 만들어내는, 본능적 감각이 있는 배우죠." (최민식)
"연기신은 송강호라 생각합니다." (이병헌)
그런 송강호가, 이번에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영화 '브로커'에서 선보인 연기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평온할 뿐이다.
"남우주연상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게 있냐고요? 전혀요. 연기는 여전히 어렵고, 저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언제나처럼)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송강호)
◆ 송강호 | "그는 아직, 연기가 힘들다"
군인(공동경비구역 JSA), 형사(살인의 추억) 뱀파이어 신부(박쥐), 국정원 요원(의형제), 변호사(변호인), 왕(나랏말싸미·사도), 택시운전사(택시운전사), 일본 경찰(밀정), 하층민(설국열차), 소시민(기생충)….
송강호가 33년 동안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천의 얼굴이다. 선과 악을 종횡무진한다. 말 그대로 장르 불문. 언제나 관객의 예상을 넘어선 연기를 펼친다.
그러나, 그의 너털웃음은 의외였다.
"연기만큼 하면 할수록 힘든 것도 없지요." (송강호)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조심스럽다는 것. "저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같을 것이다. 매번 새로운 영화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크다.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사실 매 영화가 성공할 순 없습니다. 때론 아쉬운 결과가 따를 수도 있죠. 그걸(부담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배우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죠." (송강호)
송강호는 "배우는 단거리 경주처럼 짧게 결과를 내는 직업이 아니다. 그렇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런 게 나름 (대중 정서를) 관통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 브로커 | "믿음의 이름, 송강호"
그래서, 송강호는 거장들이 사랑하는 배우다. 걸출한 연기력은 물론, 현장을 아우르는 능력까지 갖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송강호에게 한눈에 반한 감독이다.
고레에다는 지난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당시 송강호에게 공개 러브콜을 보냈다. "한국 대표 배우 송강호와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호출했다.
"작품 제의가 온 건 2016년 무렵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브로커'의 원제인 '요람' 이야기가 나왔죠. 저는 당시 '기생충'을 촬영할 예정이었고, '요람'이 구체화되면 다시 얘기 나누기로 약속했어요." (송강호)
그만큼 고레에다의 신뢰는 남달랐다. 고레에다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현장은 무조건 송강호에게 맡기면 된다'고 했다"며 "실제로 송강호 덕분에 안심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고 두터운 믿음을 보였다.
"테이크를 거듭하면 연기가 굳거나 신선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허나 송강호는 매번 전혀 다른 연기로 절 놀라게 했죠. '송강호 테이크를 합쳐 DVD에 넣을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고레에다)
실제로, '브로커'의 송강호(상현 역)는 묘하다. 잔잔한 작품 분위기처럼 고요한 캐릭터.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송강호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려도, 순식간에 관객을 빨아들였다.
"시나리오에 여백이 많았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이 배우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주셨습니다. 훌륭한 분들과 동지로 작업할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입니다. 겸손의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운이 좋았죠." (송강호)
◆ 기록의 남자 | "대기록에도, '일희' 하지 않는다"
송강호는 '브로커'로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는 "영광스러운 일이고 기쁘다. 최고의 영화제에서 (영광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곧장 '만약'을 들었다. "제가 수상을 못 하고 돌아왔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며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이지, 영화제나 트로피를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몸을 낮추고 또 낮췄다. "영화는 많은 요소가 뭉쳐 만들어진다. 함께한 배우·스태프들의 열정과 노력 덕분에 성과를 얻은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브로커'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칭찬했다.
대신 그가 자랑(?)한 건, 자신이 아닌 K-콘텐츠의 힘이었다.
"이번 칸은 특별했습니다. 칸의 어딜 가든 한국 콘텐츠나 영화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건 '기생충'이나 제 수상 때문이 아닙니다. 임권택 감독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쌓아온 결과물이에요. 그간의 노력이 이제서야 결과로 다가온 거라 생각합니다. 굉장히 뿌듯하고, 자긍심까지 생겼죠. "
그 자긍심은 책임감으로 남았다. 송강호는 "저를 비롯한 한국 감독과 배우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다시 결과물을 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대배우가 걷는 길은, 그래서 경이롭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금까지 송강호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한 일"이라 말한다. 그 말대로, 송강호의 수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송강호의 연기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여전히 배우라는 직업에 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있었다.
"칸 수상은 (연기 인생) 긴 과정 속 하나의 삽화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을 통해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게 제 유일한 목표죠."
그래서 더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배우의 궁극적인 꿈은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시쳇말로 '꼰대'가 되는 것도 경계했다. 연기는 주관의 영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순간, 성장은 멈추기 마련이니까….
"상대 배우를 존중하지 않으면 교감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저는 배우들을 지켜보고 맞춰서 연기를 합니다. 제 생각을 강요한 적은 없어요. 그래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송강호는 '브로커'에 이어 '비상선언'(감독 한재림)과 '1승'(감독 신연식)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는 '거미집'(감독 김지운)의 촬영도 끝마쳤다.
송강호가 걷는 길은, 언제나 경이롭다.
"칸 수상 소감으로, 대한민국 영화 팬들에게 영광을 바친다고 했었습니다. 그건 제 진심이에요. 늘 한국 영화를 예의주시해 주시고 격려와 질책을 해주시는 분들께 기쁨을 전합니다. 저 송강호는, 늘 변함없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사진ㅣ칸(프랑스)=민경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