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ut] 아마 한국인 중 '베지밀' 안 먹어본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베지밀은 지난 1973년부터 37년간 105억 병이 팔려나갔습니다. 두유 업계의 변치않는 베스트 셀러죠.
그렇다면 이 베지밀의 최초 개발자가 의사라는 사실은 아시나요? 베지밀로 수많은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이 살아났다는 건요?
오늘은 '정식품' 정재원 명예회장(100)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정재원은 일제강점기 보통학교를 졸업한 소년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셈이죠.
그는 15살 때인 1932년, 평양 기성 의학연구소에 급사로 취직합니다. 강습소를 청소하고, 심부름을 했고요. 의학 서적을 복사해 수강생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의학서적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남는 종이들을 집으로 가져와 한 글자 한 글자 옥편을 찾아가며 공부했죠.
정재원이 볼 수 있는 의학 종이들은 하루하루 늘어났습니다. 그는 낮에는 강습소에서 청소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정재원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우연이 찾아왔습니다. 강습소의 반장이 "15살 급사가 이렇게 어려운 책을 보느냐"며 "의사 고시를 보라"고 조언한 겁니다.
일제강점기 의사고시는 지금과는 좀 달랐습니다. 의사 밑에서 5년간 실습했다는 증명서가 있으면 시험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수험생들은 14개 과목을 공부하죠. 이후 총독부에서 실시하는 이 시험들을 전부 통과해야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재원은 2년 간 독학했습니다. 이후 19살의 나이로 의사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것도 2등으로요. 이는 당시 전국 최연소 기록입니다.
고시에 합격하고 1달 후, 정재원은 명동성모병원에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서 정재원은 아주 강렬한 기억을 가지게 됩니다. 신의주에서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안고 달려왔습니다. 아이를 살려달라며 큰절을 하고 오열했습니다.
아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음. 먹는 건 모조리 토해내고, 설사만 하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로부터 1주일 후 세상을 떴습니다.
정재원은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려 의사가 됐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이런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조사해보니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죽는 어린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술로는 이를 치료할 수 없었죠.
정재원은 22살 나이로 인천의 병원장이 되고, 정 소아과를 개원하는 등 의사로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그 의문의 병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정재원은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되는 건지 이유를 알겠다며 외국 유학을 결심한 겁니다.
당시 정재원의 나이는 40세. 육남매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외국행을 결정했죠.
"무슨 손해를 보더라도 이 병만큼은 꼭 내가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정재원)
하지만 영국 런던에서도 이 병은 고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계속해서 공부를 했고, 한국을 떠난지 5년 만에 마침내 비밀의 열쇠를 발견합니다.
아이들의 병은 '유당불내증'이었습니다. 유당불내증이란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아 생기는 병입니다.
정상인들은 소장에서 유당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돌립니다. 그런데 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유당이 그대로 대장에 내려가 세균으로 발효됩니다.
그 가스로 인해 쥐어짜는 복통이 생기고, 배에 가스가 차고, 장이 부글거립니다. 과거에는 어린이들의 사망원인이 되기도 했죠.
여기서 정재원은 '콩'을 떠올립니다. 그러고보니 콩에는 3대 영양소가 모두 있고, 유당이 없었던 거죠.
정재원에 따르면 지금에야 콩이 완전식품으로 불리며 크게 인기를 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네요.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 최초의 베지밀입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어가던 어린아이에게 베지밀을 먹이자, 아이가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병원은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를 안고 와서 "제발 그 약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이제는 진짜 '약'으로 쓸 두유를 만들어낼 차례입니다. 정재원은 쥐와 토끼에게 정제한 두유액을 먹여가며 동물실험을 했습니다. 그것도 2년 간요.
그리고 늘어나는 수요에 두유 생산을 맞출 수 없게 되자, 정재원은 대량생산 공장을 짓기로 합니다.
"두유를 먹이기만 하면 사는데 없어서 못 먹이는게 말이 됩니까. 내가 의사로서 책임을 져야겠거든요" (정재원)
두유 공장 역시 정재원이 세계 최초로 지었습니다. 일본에서 기술자들을 데려왔고, 설비를 주도적으로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엔지니어링 공부도 1년간 해야 했고요. 생산한 두유를 장기보관하기 위해 의료용 고압멸균기까지 생산해냈습니다.
정재원 회장은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의학박사이자 콩연구 전문가인 스테판 홀트는 콩 연구에 공헌해온 세계적 권위자 가운데 정재원을 가장 먼저 지목했습니다.
"정재원은 지난 30여 년 동안 고품질 콩 유아식과 두유를 개발, 한 나라의 건강 문제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스테판 홀트)
단 한 사람이 이뤄낸 '베지밀'의 성공신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사진출처=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