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기자] 유.아.인. 지난 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관심과 기대가 쏟아졌다. 취할 수 밖에 없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들뜨는 대신 차분해졌다. 곧 폭풍같은 소용돌이에서 중심을 잡았다. 연기, 단 하나로.
그 후 만난 유아인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동시에 감사해했다. 매 순간 고민하고 치열하게 연기한 덕분이었다. 꾸미지 않은 진짜 배우의 모습이었다.
"순수한 제 도전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진지하게 연기에 접근하는지 말이에요. 그럴 수 있어서, 매 순간들이 벅차고 고마웠습니다."
신드롬은 운이 아니었다. 실력이었고, 그건 곧 그의 자부심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고민들이, 또 고집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지금, 유아인은 더 신중해졌고, 또 그만큼 더 느긋해졌다. 그리고 한 겹 더 깊어졌다.
◆ "2015, 유아인의 시작"
2015년은 그야말로 유아인 시대였다. 영화 '베테랑'에서 '사도'로 이어지는 흥행 릴레이는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자연스럽게 박수를 이끌어내곤 했다.
인상적인 것은 여느 대세 스타들과는 다른 패턴이었다는 사실. 매끈한 비주얼, 혹은 잘 다듬어진 캐릭터 덕분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연기, 그 힘으로 만든 열풍이었다.
유아인은 개성과 연기력, 여기에 흥행력까지 가진 배우로 올라섰다. 또래 배우 중에서는 유일무이했다. 그러자 선뜻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놀라운 날들이 찾아왔다.
"지난 1년은 기다리고 꿈꿔왔지만, 제게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요. 또한 배우로서 성취감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육룡', 유아인이 나르샤"
'베테랑'이 행운이었다면, '사도'는 그것들을 실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성취감으로 이끈 것은 SBS-TV '육룡이 나르샤'였다.
이.방.원. 냉혈 군주라는 이미지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실존 인물이다. 심지어 '용의 눈물' 유동근의 그림자는 너무나 짙었다. 이방원, 그 자체가 도전이었다.
"기존 이방원과 다른 뭔가를 꺼내야 했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다른 각도로 바라봤죠. 청춘 이방원의 혼란, 그로 인해 빚어지는 연약함과 강인함이 보였습니다."
유아인의 이방원은 달랐다.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것을 넘어 50부 내내 바꿔 나갔다. 눈빛, 목소리, 톤의 차이 등으로 캐릭터의 변화를 담아냈다. 그의 미션이었다.
"한 인물의 긴 세월을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나이부터 내면까지, 그 변화를 말이죠. 이방원 마음 속에 벌레가 자라면서 달라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했습니다."
◆ "성장의 순간, 소중한 경험"
이방원이 달라지면서 유아인도 변해갔다. 이전까지는 "빽빽하게 연기"해왔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한발짝 떨어지게 되는" 여유를 알게 됐다. 50부작이 준 선물이었다.
그는 "호흡이 길다 보니 내 연기를 실험하고 점점 맞게 녹여내는 것이 가능했다"며 "덕분에 연기는 더 다채롭게, 그 결과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시간과 과정, 그리고 결과는 오롯이 그의 자산으로 남았다.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도 맛봤다. 그 어떤 찬사보다도 값진 선물이었다.
"연기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굉장히 신선했고 새로웠습니다. 저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현장에서 숨쉴 수 있다는 것이…. 참 소중했습니다."
◆ "기대와 오해, 부담은 없다"
그러면서도 그 성장의 기쁨에 취하지는 않았다. 제 자리에 멈추는 것을 경계했다.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렸다. "선 굵은 캐릭터만 할 줄 안다,는 오해"를 깨는 것.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밀회' 선재에요. 최근의 캐릭터는 제 번외편이랄까? 아직 사람들이 이 카드를 몰라주고 있구나, 싶죠. 저를 더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부담은 없었다. 오히려 흥미로워했다. 대중의 시선을 매번 뒤집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다."작품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이 뒷받침됐다.
"저는 한 명의 크리에이터입니다. 선입견을 만들었다가 그걸 다시 깨부시는 것이 제 일이죠. 다행히 전 선입견이 오래 가는 걸 못참고요. 참 재미있는 일이지 않나요?"
◆ "서른, 또 다시 열린 유아인"
더 큰 인기나 이슈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자세는 유아인이 생각하는 배우의 본분이었다. 또 그가 꿈꾸는 진정성있는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이기도 했다.
"그저 스타를 꿈꾼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곧 알았죠. 연기에 계산이 들어가면 불순해진다는 것을요. 그건 멋진 배우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수하고 깨지며, 또 반성하고 성장하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됐다. 진짜 연기를, 그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연기로 대중의 실험대에 서고 싶습니다. 연기만으로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차별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요. 지금 저는 그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 온 서른. 유아인은 여느 때처럼 다음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U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