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다은기자]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카프가 명언 中)
배우 심은경이 6년 만에 스크린 복귀 현장에서 소설가 프란츠카프카의 말을 꺼냈다. 그만큼 자신의 신작이 한국 관객의 시선과 생각을 깨우는 강렬한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것.
그의 바람은 관객에 성공적으로 닿을 수 있을까. 일단, 신선함은 있다. 영화 '더 킬러스'가 한국 영화계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총 4명의 감독 연출작을 하나로 뭉쳤다.
그중 한편을 맡은 장항준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 근래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와 용기 있는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신감을 전했다.
영화 '더 킬러스' 측이 18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언론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종관 감독, 노덕 감독, 장항준 감독, 이명세 감독, 배우 심은경이 자리했다.
영화 '더 킬러스'는 시네마 앤솔로지다. 총 4명의 감독이 헤밍웨이 단편소설 '더 킬러스'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했다. 이명세 감독이 총괄 크리에이터로 나섰다.
이 감독이 기획한 아이디어였다. 감독은 "지속 가능한 영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되고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오랜 꿈이 있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동명의 헤밍웨이 소설을 택한 이유도 덧붙였다. 이명세 감독은 "'더 킬러스'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이 시대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이후 감독들을 모셨다"고 전했다.
개성 강한 감독들을 모았다. '최악의 하루', '조제' 김종관 감독부터 '연애의 온도', '특종: 량첸살인기' 노덕 감독, '리바운드', '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까지 유니크한 색깔을 지닌 연출가들이 합류했다.
장항준 감독은 "어렸을 적부터 이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보고 자랐다"며 "아이디어, 콘셉트, 내용을 보고 굉장히 다른 색깔을 느꼈다. 다시 오지 못할 기회로 여겼다"고 이유를 말했다.
영화는 총 4편으로 구성된다. '변신'부터 '업자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무성영화' 등이다. 킬러를 주제로 충격적인 사건들과 인물들, 미스터리한 서사가 펼쳐진다.
배우 심은경이 전편에 등장해,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펼친다. 이 감독이 먼저 심은경에 출연을 제의했고, 흔쾌히 승낙했다. 심은경은 "꿈 같은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어 심은경은 "중학생 때 'M'으로 이 감독님 영화를 처음 접했다"며 "대감독님과 충무로 유명 감독님들을 한 프로젝트에서 만날 수 있어 뜻깊은 도전이었다"고 했다.
심은경은 영화 출연자 중 유일하게 모든 이야기에 등장한다. 미스터리한 바텐더, 의문의 피해자, 타블로이드 잡지 모델, 괴짜 웨이트리스까지 개성 강한 캐릭터들로 열연한다.
그는 "여러움과 고비를 넘겼다기보다, 즐기면서 촬영했다. 모든 현장을 즐겼다"며 "연기를 처음 했을 때가 떠올랐다. '즐겁고 계속하고 싶다'는 감정을 되찾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다"고 했다.
심은경은 각 작품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변신'에서 그는 필모그래피 사상 첫 뱀파이어 연기에 나섰다. 수많은 레퍼런스와 뱀파이어 등장곡들을 찾고 탐구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처음으로 크랭크인된 '업자들'은 폭염 속에서 촬영했다. 감정의 바이레이션이 큰 인물을 소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즐거움이 고뇌가 되기도 했다.
그는 "감정의 증폭이 많았다.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어갈수록 역할이 어렵게 다가왔다"며 "짧은 러닝타임 안에 캐릭터를 어떻게 도드라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무성영화'는 심은경의 시선을 전환시켰다. 그는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하루는 그가 이 감독에 캐릭터의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물었고, 이 감독은 '느끼면 저절로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고 답했다.
감독들은 심은경의 연기에 호평했다. 김종관 감독은 "심은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결이 달랐다"며 "감독으로서 (배우를) 사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덧붙였다.
심은경의 연기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더 킬러스'는 여러 이야기를 그린 만큼, 각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분산된다. 또 목적 없는 폭력신은 난해하기까지 하다. 러닝타임 내내 감독의 의도를 이해해 보려다 에너지가 소진된다.
너무 많은 자유를 허락한 탓일까. 이 감독은 "창작에 많은 열린 공간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며 "4편의 다른 영화지만 한 편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 또한 "원래는 모든 감독이 하나의 작품을 다르게 표현하는 기획이었다"면서 "너무 어렵겠다 여겨, 모티브만 가져가서 살인자와 타겟, 한정된 공간, 저마다 생각하는 헤밍웨이를 표현했다"고 더했다.
난해한 연출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이 감독은 "킬러들의 난장 소동극이다. 찰리 채플린 등의 움직임을 담고 싶었다"며 "영화는 이미지니까 이를 재현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영화의 메타포에 관해서도 요약했다. 이 감독은 "답이 제목에 있다. '무성영화'가 곧 저희 영화가 달려가는 방향이다"며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장르에 담아 만든 영화다"고 했다.
'더 킬러스'는 오는 23일 극장 개봉한다. 이후 VOD 및 OTT를 통해 윤유경 감독의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 조성환 감독의 '인져리 타임'까지 총 6편이 포함된 확장판으로 공개된다.
<사진제공=스튜디오 빌>